“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마 5:8,9 강인국목사.
그 동안 팔복을 강해 했는데 좀 아쉬운 면이 있다. 그 동안 한국말과 영어로 설교하다보니 설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설교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 팔복 전체를 review하고 결론을 말씀드리겠다.
* 헬라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시세로, 세네카) 등에 의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로마 전체에 강하게 퍼져 있었다.
로마의 철학자들은 상당히 정신과 마음의 행복에 대해서 말했지만, 당시 로마 사회는 물질 추구와 권력 추구와 쾌락의 추구를 행복의 조건으로 여겼다. 당시 세계의 절대 강대국인 로마는 역사상 가장 부도덕하였고, 육체적 쾌락과 탐욕을 즐긴 타락한 사회였다.
이러한 로마 사회에 대해 예수님은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행복을 열심히 추구하는데, 참된 행복은 바로 이것입니다고 말해 주시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이 사용하신 복이라는 단어는, 그 당시 철학자들과 사람들이 통속적으로 사용하던 그 단어를 사용하였다. 좀 더 고상하고 종교적인 단어가 있었는데도 굳이 그 당시의 통속적인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잘못 새겨져있는 행복의 의미를 바르게 알려주기 원하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한다. 행복은 현세계가 아니라 영원한 세계 속에 있다. 행복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것 속에 있지 않고 역설의 진리 속에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리고, 팔복에 대해서 하나씩 다 말씀드렸다.
* 이제 팔복에 대한 결론이다. 본문 8,9절을 보자.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된 이유는,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사람은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잃어 버렸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 청결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는 것이다.
* 그리고, 사실 팔복의 다른 복들도 보면, 복을 표현하는 단어는 다르지만, 복의 궁극의 원인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게 된다.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누가 천국의 주인이신가? 하나님이시다.
(제가 누가…라고 물으면.. 답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시면.. 하나님이라고 답해 주시길…)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누가 위로를 해 주시는가? 하나님이시다.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누구의 땅을 얻게 되는가? 하나님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누가 갈급함을 채워 주시는가? 하나님이시다.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누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신다.
복을 말하는 단어들은 각각 다르지만, 그 단어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있어서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
* 성경에는 복에 관해서 많이 말씀해 준다.
신명기 33:29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하나님)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29 How happy you are, Israel! 이스라엘(성도)이 행복자이다. 왜?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백성이기에…
시편 16: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11…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 되는 관계이오니, 그것이 나의 복입니다.
로마서 4: 6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참된 복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힐링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고,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정립이다.
* 신명기 28: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물질적인 복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주시는가?
비기독교적인 철학자나 사상가들도 물질이 주는 해악에 대해서 경계하는데 어떻게?
고고한 기독교의 진리가 저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현세적인 복 자체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다.
그 뒷 구절들에 보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이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현세적인 복들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순종과 축복의 원리를 반복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그 순종과 축복의 연장선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이 현세적인 복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서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지혜이다.
참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고 강화될 때 온다.
힐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때 일어난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고, 신앙생활은 우리 일생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발전시켜가는 과정이다.
결: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남으로서 항상 불안하고 불행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평강과 안전을 추구하고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다니지만, 이 세상의 축복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일시적이다.
모든 복의 궁극적인 근원은 하나님이고,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
영화 <God loves all children> 엄마와 딸 아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homeless가 되었다. 아이에게는 오직 어머니만 있으면 행복하다. 노숙, 좀 굶어도, 거친들이어도… 아기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엄마가 같이 있는 것이 가장 좋다.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이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있고,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행복한 존재임을 알면, 우리가 때로는 이 세상에서 어려움 당하고, 슬픈 일을 겪어도 절망적으로 힘들지는 않고 이겨내고 결국에는 승리한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참된 행복을 소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