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을
해야 합니까? 고후 9:5-11, 강인국목사
오늘 기후도 좋지 않고 시련을 무럽쓰고 교회 나오셨는데, 설교내용이 여러분은 마음의 평화를 깨트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오늘은 성도의
삶 중에서 특히, 헌금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한다. 헌금은
해야 하는가, 하지 않아도 되는가? 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한다.
사실, 헌금에 대한 설교는 제가 가장 하기 거북한 설교 주제이고, 성도님들도 가장 소화시키기 힘든 주제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설교를 하지 않으면? 목사가 해야 할 일, 성도님들을 바르게 가르쳐야하는 사명을 유기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제가 목회하는 동안 물질과 헌금에 대해서 몇 년에 1번 정도씩 하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성도님들에게 인내와 이해가 필요한 시간이다. 메시지를 잘 받아주시기 바란다.
*
신앙생활에서 헌금은 해야 합니까? 결론은그것은 본인의 자유이다.
. 신앙생활은
개인의 자유이고, 봉사나 헌금은 개인의 자유이다.
이것이 Populisms에 젖은 강목사 개인의 생각인가?
*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막 2:17) “예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 교회는 누구든지 나아올 수 있다. 죄인, 거지, 피부색, 아무런 기준을 정해놓지 않았다.
- 이것은 신앙의
기본이다. 봉사나 헌금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 그 이유는? 교회는 믿음의 가족 공동체이고, 영혼의 안식처이다. 신앙생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구원이다. 봉사나 헌금보다 영혼구원이
중요하다.
*
왜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런 핑게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헌금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교회오시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았다.
.
(마태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부담감 갖지말고 초대에 나오라고 권면하신다.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주님은 “누구든지” whoever -> 죄인과 범법자, 누구든지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주시며 사랑하신다.
- 이것은 기독교의 불변의 진리이고, 핵심 진리이다.
*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한 두가지 종류의 진리가 있다.
- 하나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다 받아 주신다.
- 또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요구가 있다.
예) 산상수훈(마 5-).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믿는자들을 향해서 주시는 말씀이다.
상당히 강력하고 엄격한 수준을 요구하신다.
. 원수를 사랑하라: 내 가족 사랑도 힘든데..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가능할까? 그러시더니,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면 살인이다,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다고 말씀하신다. 매우
엄격하시다.
-
헌금의 문제는 어떻게 말씀해 주시는가? 먼저
구약에 보면
(신 14:22) “너는
마땅히…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말 3:10)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라” ->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드려라는 것이다. 엄청난 요구이다.
*
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는가?
-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구약 율법이기에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신학을 전혀 모르는
소리이다.
. 율법이기에 없어진 것은 제사와 제사법이다. 왜?
계시의 발전과 성취로 제사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예) 구약의 십계명이 신약에서 없어졌는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런 계명이 없어졌는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 본질적 의미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해석하시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
십일조는 없어졌는가? 십일조와 헌물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 헌금으로 무엇을 했나? 당시 모든 지파들은 기업(사업)을 가졌다. 그런데 유일하게 레위족속들은 기업이 없었다. 세상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게
했다. 그리고, 그 11지파가
바치는 11일조로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 가족들의 생계와 성전관리와 그 구제 일들을 하게 했다. 신약에서는?
.
신약에서는? 성전대신 교회가 있고, 제사장과 레위인 대신 복음사역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한 사역자들인 목사, 전도사, 선교사가 생겼다. 구약의 율법이라서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 헌금의 목적과 용도가 거의 같기에 없어져야 할 이유가 없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사람들의 헌금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수 있지 않는가? 황금/다이야를 쏟아지게 해 주시면
되는데.., 아니면 중동처럼 기름이 콸콸 쏟어져서 헌금 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는데…
*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헌금을 하라고 하시는가? 그것은…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동역자 삼으시기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더불어 일하시기 원하신다.
- 선교: (마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누구보고 가라고요? 우리보고 가라고 하신다.
-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 “너희는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 소득의 일정부분을
내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네 이웃을 사랑해 주어라, 가난한 자를 너희들이 구제해 주어라,
2.
사람에게 물질이 너무 귀하니까,
-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통해서 사람을 바르게 세우기 원하신다.
- 성도가 물질에 대한 가치관을 바르게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 물질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축복이지만 동시에 넘어야 할 시험이기도 하다.
-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사람이 물질로서 이 세상의 편안과 부귀를 추구하면 그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사람이 물질을 하나님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교회는 누구든지 오는 곳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믿는자와 더불어 일하시기 원해서 우리를 향하여 바르게 살라고 하시고,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라 하시고, 우리가 가진 소중한 물질을 통해서
참된 희생의 의미를 배우고, 물질/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가치를 두라고 하신다.
*
헌금의 자세:
1. 5절: 미리 준비하라. 즉흥적으로 드릴
것이 아니다. 계획하고 준비하여서 정성으로…
2. 7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헌금하는 것이 즐겁는가/특권인가? 헌금이 부담되는 이유는 뭘까?
예)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희생과 사용하는 물질이 아깝고 부담되는가?
아깝지 아니하다. 왜? 사랑하기 때문에… 물질이 사랑의 척도이기도 하다.
처음 만날 때, 아내가
나를 사랑함을 느꼈다. 지금은 별로….
마찬가지로,
1)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믿음), 2) 주님의
신비한 은혜를 경험못했고, 3) 생활이 어려우면 힘들다.
믿음/사랑과 은혜와 현상황이 준비되지 않으면 헌금생활이 어렵다. 믿음생활이 부담이 되기쉽다. 그런 순간에 헌금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
하지만, 성도라면, 문제를 진단하고, 즐거움으로 헌금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고민해야
한다.
. 믿음(주님사랑)의 연약함/은혜에 감사가 없기 때문이라면 믿음/은혜받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라면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 막연하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떤 기간을 정하고, 생활비와
헌금을 정하고, 주님께 도움도 청해야 하며, 그리고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드리기를 애써야 한다.
*
요 3:16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신다.
-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의
사랑 VS 본문의 하나님 사랑은 다르다.
. 요 3:16의
사랑이 아들에 하나님의 연민적인 사랑이라면, 본문의 이 사랑은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으로 인하여
사랑하시는 것이다.
. (막 12:41-44) 가난한 과부의 헌금: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은
성도의 헌금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 예수님은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동전2) 넣는 것을 보시고,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칭찬하셨다.
-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탕진한 탕자를 사랑은 하지만, 칭찬은 하지는 않았다.
- 우리의 헌금생활이 주님으로 부터 칭찬받을 수 있을까???? “주님의 칭찬” 그것이 중요하다.
* 우리가 믿음과 생활 조건이 좋아져서 헌금을 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이기도 하다.
어려움 속에서 믿음으로 물질을 드리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도우심도 경험하기도 한다.
- 6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과의 관계 build up을
위해서, 힘든 중에 헌금해 보라고 하신다.
- 하나님께 드릴 수록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고,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해 주신다고 하신다.
- 유치하다? 아니다. 하나님깨서 사람의 수준에 맞추시기 때문이다.
예) 강목사 사무실에
캔디가 있다. 그것으로 아이들과 관계를 build up한다.
예) 제 경험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경험: 질병치유, 극적인 사건, 헌금을 통한 하나님 경험이었다.
- 결: 우리의 마음이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하기까지 믿음이 자라기 원한다. 교회가 교회답게 더욱 든든이 서고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원한다.
성도의 길은
축복과 평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에 시련과 고난도 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십자가의 무거운 짐도 져야 한다. 그럴찌라도 주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결단하는 것이 성도의 길이다. 찬송가 364장 같이
부르며 말씀을 마치지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