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화평과 높여 줌으로 세워진다" 행 9:26-31
평창 동계올림픽 잘 시청하고 계시는가요?
한국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스켈레톤-썰매부분에서 윤성빈이라는 한국청년이
금메달을 땄다. 이것은 동계올림픽 썰매부분에서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선수로서는 사상처음 딴 금메달이다. 신문에서는 금메달을 딴 윤성빈 선수를
소개하면서, 오늘의 그가 있게 한 또 한사람을 소개하는데 그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리오 구겐베르거(56세)라는 사람이다. 기사는 20년
전에 스켈레톤의 불모지인 한국에 스켈레톤을 소개한 구겐베르거에 대해서 말하면서, 우리는 윤성빈의 금메달을
기억해야 하지만, 그를 있게 한 리오 구겐베르거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보면, 그 역사의 전면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영웅이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영웅 뒤에서 그림자처럼 말없이 서 있는 그림자 영웅이 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림자 영웅이라는 말은 한번 만들어 본 단어인데 (누군가 썼을
수도 있다), 그들은 미래의 영웅이 아직 어리거나 부족하고 평범했는데,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용기를 주고, 희생적으로
후원해 주어서 미래의 영웅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한 사람(친구, 부부, 부모일 수 있다)을 말한다.
예) 한국의 영웅 이순신: 이름없고
인맥없던 이순신을 후원/준비/천거/도운 유성룡 대감..
성경에도 역사의 정면에 서있는 믿음의 영웅이 있으면, 그 영웅
뒤에서 그 믿음의 영웅을 있게한 그림자 영웅들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본문 31절에 보면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고 적고 있다. 그 동안 초대교회는
수많은 시련을 겪고있었는데, 이제 괄목할 정도/깜짝놀랄 정도로
든든히 섰다고 말씀한다.
무슨 일로, 누구로 인하여 교회가 그렇게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갔는가?
본문은 사울이라는 사람이 기독교인을 잔인하게 박해했는데, 그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교제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26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두려워하여 사울이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였다” 고
말한다.
초대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사울은 도저히 용서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무서운 적이다.
얼마 전까지 사울은 살기등등하게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서 핍박하고 스데반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자신을 공동체에 받아 달라고 한다.
어떻게 믿어요? 사울에 대한 미움의 감정도 있지만,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위장잠입하는 것인지 유대교의 첩자인지,
자신들의 생명과 기독교의 존폐여부가 달려있다.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 아무도 사울을 받아 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때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나섰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사울을 추천하고 둘 사이를 화해시킨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성도들이 마음을 열고 사울을 받아 주었다. 바나바는 평화의 중재자(peace maker) 역할을 했던 것이다.
교회가 어떻게 평안하고 든든하게 세워지는가?
1. 교회는 peacemaker(평화 만드는
사람)로 인하여 든든히 세워진다.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이고, 바나바는 별명이다. 바나바의 뜻은 “위로자/권면자” 라는 뜻이다.
바나바는 다른 사람을 상담하고, 위로하고, 불편한 관계의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 peacemaker 역할을 제대로 하였다.
그냥 peacemaker 가 아니라, 불안전했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기독교 역사를 바뀌는 위대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교회는 peacemaker가 있어야 한다. 많아야 한다. 아니, 성도 모두가 PM가
되어야 한다.
-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로 하여금 Peace maker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골 1:20)에서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평을 이루사”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성도는 사람 사이에서
평화를 만들고, 불화한 사람 사이를 화평케 만들어야 한다.
* 평화를 만드는
도구와 원리는? 말이다. 바나바는 사울에 대해서 좋은 말을
했다.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자세히… 확고하고 말해 주었다.
평화의 중재자는 갈등하는 두사람 사이를 이해해 주고/ 좋은
말/ 확고하게 말해 주면 된다.
* 주일날 등산을
간 권사, 불만을 토한 목사, 무사히 돌아오게 기도했다고
전하는 친구권사,
교회가 어떻게 평안하고 든든하게 세워지는가?
2. 교회는 서로를 용납하고 높여주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회심과 합류로 믿음의 힘을 얻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다.
. 사울은 유대교의 지도자였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무섭게 박해했다.
그런 사울이 예수님를 만나고/믿고 하루
아침에 완전히 변화되니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 믿음의 산증인으로 인해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불꽃이 활활 타 올랐다.
- 초대교회는 사울로 말미암아 신학적인 정립을 하였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다.
29절에 보면 사울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을 했다고 적고있다.
- 헬라파 유대인들? 이스라엘 고향을 떠나서
당시 최고의 문명인 헬라 문화권에서 살고 헬라문화권의 영향받은 유대인들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교 사람들로 보여진다.
사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증거하고 격렬한 변론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식했다, 그에 반해
사울은 해박한 학문과 헬라철학에 정통했다.
. 사울은 철학에 굉장한 지식과 자부심을 가진 그 헬라파 유대인과 신학적인 토론을 벌였다. 격론을 벌인 것 같다. 사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 인것을 논리적이고, 학문적이고, 성경적으로 증거하였다.
그것은 굉장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 그에 그들은 화가 났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기까지 하였다.
. 그럴수록, 사울-사도바울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믿음과 진리가 견고하게 확립되었던 것이다.
* 그 모든 뒷면에는 바나바가 사울을 용납하고 높여 주었기 때문에, 사울이 그런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었고 교회가 든든히 서 갔다.
. 초대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사울은 초보자요 입문자에 불과하다. 바나바는 그런 사울을 인정하고 높여주어서, 심지어 자신이 목양하던
안디옥교회를 바울에게 내어주며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만든다.
바울이라는 믿음의 영웅 뒤에는, 바나바라는 믿음의 영웅의 희생/낮아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자녀나 사랑하는 사람은 용납하려고 애써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 마음에 들어와 있다. “네가 내 마음에 있다”
타인을 용납한다는 말은 희생이 담보된다. 용납은 아픔감수, 인내와 사랑이 필요하다.
- 타인을 높여 준다는 말에는, 상대적으로 내 자신은 낮춘다는 말이 포함되어있다.
타인을 높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내 자신을 낮이지 않으면 높여줄 수 없다.
- 현대에는 영웅이 없다고들 한탄한다.
제 생각은… 인물이 없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높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주신 authority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높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 교회는 앞에 나서고 주장하기 보다, 뒤에서 협력하고, 서로를 높여줄 때 일이 된다.
- 붉은 벽돌이 얼마나 튼튼한가? 100년 되었는데 색깔과 견고함에 놀란적이 있다.
. 그런데 벽돌만으로는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다.
. 벽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시멘트반죽(물 + 부드러운가루)이 있어야 한다.
- 서로를 화해시키고, 서로를 용납하고, 높힌다는
것은 내가 시멘트반죽이 되는 것을 말한다.
- 우리 서로에게 부드러운 물이 되고, 가루가 되어서, 시멘트 반죽이 되자.
결: 교회는 훌륭한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니다, 아이디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니다. 평화로운 입술, 평화를 만들기를 애쓰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인정하고 높여주는 것을
통해서 교회는 세워진다. 그 일은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서 시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힘은 위대하다
한 사람이 화해자가 되어서 서로를 화평케 만들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높여 주었더니, 교회가 쇄신되고, 생기가
넘치고, 든든히 세워졌다.
우리 서로 평화를 만들기를 경쟁하고,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높여주는 아름다운 성도님되어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 가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