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산다” (요 12:24-25) [강인국목사 설교]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역설(Paradox)의 진리이다. 이
말은 진리를 말하는데 모순되는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속에 참된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표현법을 말한다.
- 성경은 공의와 사랑을 말한다.
-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로마서, 에베소서) vs.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다(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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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0: 26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려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
- 그리고, 오늘 제목처럼
“죽어야 산다”는 역설의 진리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이다.
-
죽어야 사는 이 진리에 대한 의미도 몇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산다.
죽어야 산다는
것에 대한 진리의 근본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된다.
- 내가 죽는다는 말은 나의 옛사람의 모습/성격/생각/가치관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런 내가 죽어야, 새생명의 탄생한다.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의 새생명이 탄생한다.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올해 모토가 되는 것이다.
-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 어떤 상태를 말할까?
예) 이집트는 모슬렘국가이다. 그런데 그곳에
끈질긴 생명으로 초대교회 당시부터 교회가 있어왔다.
마가에 의하여 세워진 콥틱교회가 있다. 그리고, 인도에는 선 다싱이라고 하는 유명한 기독교수도사가 있다면, 이집트에는 “사막의 등불” 이라고
불리는 마키리우스라는 수도사가
있다.
어떤
청년이 마카리우스에게 물었다. "선생님,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마카리우스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무덤에 가서 그 안에 누워 있는 시체에게 욕을 한 바탕 퍼부어 보게." 청년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마카리우스 선생이 시키는 대로 하고 왔다. 마카리우스는 다시 공동 묘지로 보냈다. 이번에는 온갖 칭찬을 하라고
했다. 청년은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했다. 돌아온 청년에게
마카리우스가 물었다. "자네가 욕설을 퍼부어 대니까 시체들이 성을 내던가?" "아닙니다"하고 그가 대답했다. "그럼 칭찬을 하니 그들이 좋아하던가?" 이번에도
그는 "아닙니다"하고 대답했다. 마카리우스가 청년을 보면서 말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이 예화를 들으면 지금 마음에 온갖 복잡한 생각이 날 것이다. 그 예화가 말이 되는가? 라며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고, 이성을 가졌는데 비유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성도가 된다는
것은 죽은 시체가 되는 것처럼 그 정도까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주님을 믿는 것은 나의 옛사람의 모습이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다시 살고, 나의 새로운 인격과 가치관이 생기는 것이다.
2.
내가 죽어야 내가 산다.
본문 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눅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사는
절대적인 축복을 얻는 것이다.
- 그리스도안에서 나의 옛사람이 죽어야, 찬란한 부활이 있고,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한 복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 중생(Born
again):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죽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그 의미를 아는 것이다.
3.
내가 죽어야 타인이 산다.
본문: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의 밀알이
썩어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 30, 60, 100 배의 열매를 맺는다.
내가 죽으면
엄청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사회가 사랑과 정의로운 나라로 변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 라는 말은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말한다.
내가 할 말이
얼마든지 있어도 꾹 참고, 내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도 져 주고, 속이
상해서 막 해대고 싶어도 예수님 생각하며 꾹 참아야 한다. 그래서 영혼을 구원하고, 이 세상이 진리와 평화가 넘치는 나라가 된다.
예) 열대어 키우기. 사람들이 열대어를 키워 볼려고 하지만 잘 죽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사실 물을 너무 자주 완전히 갈아 주어서 열대어가 죽는다.
열대어는 화장실과 식탁을 같이 쓰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열대어의 배설물은 암모니아이다. 암모니아 ->(박테리아) -> 아질산염 -> 질산염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물고기들이 어항에서 살 수 있다. 그래서, 필터와 물을 한꺼번에 다 갈면 안된다.
물고기의 배설물이 푹푹 썩어야 물고기가 살 수 있는 물이 된다. 푹푹 썩어야 거기에 생명이 소생한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그 정도까지 희생하고 인내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 나부터 바꾸자:
AD 100년경 무명의 작가가 이런 글을 썼다. "젊을
때는 세계를 바꾸려 했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나라를 바꾸려고 했지만 바꾸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이 동네라도 바꾸고 싶었지만 되지 않았다. 늙어서는
가정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되지 않았다.
바꾸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바꾸었더라면
가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가정은 동네를, 나라를, 그리고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 모두가 생각해 보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화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네 자신이 먼저 죽고/ 변화되자. 그리고
가정/ 주위사람/ 공동체/
교회를 살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