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보고 (롬8:33-37) 세상을 이기는 신앙 , 이광호선교사
오늘날 우리 육신의 삶을 보면 우리 모두가 어느 시대보다도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누리며 살아갑니다마는 영적인 면에서 보면 도덕적인 타락은 물론이요, 불안과 공포가 끊이지 않는 시대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몇 주전에도 프로리다 파크랜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한 학생에 의해 많은 사상자가 나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마는 여러분, 올 들어 벌써 몇 번째입니까?
왜 이 말씀을 드립니까?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 가운데 살아가지 아니하면 우리는 불안과 공포를 떨쳐 버릴 수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아침,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주셨던 말씀을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도 어떤 환경속에서도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A. 이김의 근거
1.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삶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이김의 근거, 다시 말씀 드리면 날로 어두어져가는 이와 같은 세상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세상의 어떤 유혹과 핍박도 능히 이겨 나아 갈 수있는 믿음의 근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본문 말씀 가운데 35절에서 37절 까지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35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Shall trouble or hardship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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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As it is written: "For your sake we face death all day long; we are considered as sheep to be slaughter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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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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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에,” 누구로 말미암아 이긴다고 말씀합니까 ?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7)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그 분이 누구입니까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하여‘..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 모두는 오늘도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닦친다 할지라도 참고 인내하며 소망 가운데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계속해서 33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3)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시니라” (34)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5)
38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 세상의 어려움과 핍박과 환난까지도 능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 재물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능력입니까 ?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까지 자신을 버리신 우리 주님의 은혜와 독생자 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화>
40년 동안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늘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하는 가운데 진정 구원의 기쁨이 없이 살아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좀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참된 헌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가운데 그녀는 수녀가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여전히 마음의 공허함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수도원의 복도를 걸어가던 중 예수 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채찍에 맞으시는 그림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 그림은 복도를 오가며 늘 보던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는 마음의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주님이 맞으시는 그 채찍이 다른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그녀 자신을 위함임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채찍은 물론이요 십자가의 고난 또한 그녀 자신을 위해 당하신 고난임을 깨닫는 가운데 그녀는 죄인됨을 고백하며 벅찬 감격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는 가운데 예수님 처럼 고통받고, 소외당하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사랑을 전하는 자로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한 대로 그날로부터 평생을 주님의 가슴을 안고 주님의 손을 가지고 남들이 돌보지 않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며 장애자,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버림받은 자, 문둥병자를 돌보며 저들의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는 사랑의 위로자요,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바로 테레사 수녀입니다.
주님의 나를 위해 베풀어주신 사랑을 깨달음으로 인하여 평생을 기쁨 가운데 연약한 자들을 돌보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
그곳은 다름아닌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를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 하시고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테레사 수녀와 같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기쁨이 없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을 바라볼 수있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다른데 있지 않은 줄입니다.
바로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거할 때인 줄 믿습니다.
저는 올 한해 여러분들의 삶이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가운데 테레사 수녀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삶
두 번째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11장을 우리가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만은 그곳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하나 같이 무엇으로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합니까?
바로 믿음으로 이겨나갔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이김의 근거는 바로 믿음이란 말씀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가 어떻게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합니까? 히브리서 11장 7절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11:7)
갈바를 알지 못하나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또한 하나밖에 없는 이삭을 그것도 나이 100세에 얻은 귀한 자식이지만 하나님께서 드리라 할 때 어떻게 합니까?
번제로 드리기 위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향하고 있더란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묵과해서는 안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앙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18절과 19절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8)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19)
무슨 말씀입니까 ?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약속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는 신앙가운데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나아가고 있더란 말씀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신앙 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선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인 줄믿습니다.
<예화>
시카고에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 입니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있었고, 무디 목사님의 교회도 불타버린 것입니다.
이 때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빈정대듯이 질문합니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엇이든지 구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 하셨지 않습니까 ?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보고만 계시는 것일까요?"
이 때 무디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아마도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지으려면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신 것 같습니다."
"비록 제가 수표와 돈은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만은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은 가지고 나왔으니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 안 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
여러분,
무디 목사님께서 더 큰 교회를 지었겠습니까? 못 지었겠습니까?
그 후에 무디 목사님은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영적인 큰 부흥을 일으키는 가운데 영국교회는 화재로 인해 다 타 버린 ‘무디 바이블 처치’ 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 하나님께서는 영국 교회의 성도들의 헌금을 통해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 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짓게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 바로 무디의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은 재능이나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가 아닙니다.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 5장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저는 우리 모두 믿음으로 세상 모든 곳을 이겨나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이김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성도는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3. 말씀과 기도의 삶
더나아가 세 번째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다름아닌 말씀과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귀한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바로 성령의 검인 말씀과 더나아가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이 주님을 믿고 따른다면서도 실패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예수는 믿는다고 하는데 말씀대로 살아가지를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지식적로는 많이들 안다고 하는데 행함이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기도가 또한 필요한 줄 믿습니다.
말씀과 기도 같이가야 합니다.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성령에 인도함 받는 삶
마지막으로, 세상을 승리하기 의한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는 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가야 합니까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 만은,
a. 첫째는 성령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도를 나가보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마는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으로 인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b. 두번째는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버리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의 열매들을 맺으며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무엇입니까 ?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모든 열매들이 바로 성령 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비로소 하나 하나 맺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c. 세번째는 진리의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또한 진리 가운데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요16:14)
성령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잘못된 행실을 회개하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d. 더 나아가 성령 하나님은 마귀를 대적할 힘을 주십니다.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기쁨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의 영을 늘 새롭게 하여 주시며 삶을 인도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자는 없다고 사도 바울의 고백합니다.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찬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어떤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로마서를 쓰고 사도 바울이 그저 성도들에게 위로나 줄려고 몇 마디 쓰고있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의 신앙의 산 체험으로부터 나온 신앙의 간증이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쓴 기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후서 11장 23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이 간증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3)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24)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5)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6)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7)
무슨 말씀입니까 ?
바울에게는 수많은 고생과 위협이 있었지만은 이 모든 어느 것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을 수가 없더란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넉넉히 이기는 신앙이란,
1)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신앙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요,
3)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 따라 살아갈 뿐만 아니라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신앙입니다.
4)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송 중에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은 종교 개혁자였던 말틴 루터가 쓴 곡입니다. 그런데 이 찬송은 사실 루터가 가장 힘들었을 때 쓴 찬송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힘과 용기를 주는 찬송인 줄 모릅니다만은 어떻게 이런 담대한 곡을 쓸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아닌 주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믿음 더나아가 성령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새찬송가 585장, 구찬송 384장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 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 끌어 우리를 삼키려하니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았긴 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무쪼록 올 남은 한해도 어떤 어려움과 환경속에서도 불안과 걱정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사랑 가운데 넉넉히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부족한 종을 이곳에 보내 주셔서 함께 말씀을 나누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세상은 요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어떤 환경과 역경 속에서도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며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