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 겸손과 연약함으로 승리하시다”종려주일, 2018년 미시아나교회 마태복음
21:4-11
오늘은 교회절기로 종려주일이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입성하시는데 온 군중들이 그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며
열광한다. 그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주님을 환영하였기에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이름하였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기 원한다.
본문은 첫번 종려주일인데, 우선적으로 예수님이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구원자 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1)
1-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서 ‘나귀 새끼가 메여있는 것을 보거던 풀어서 끌고
오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말씀한다.
-
이렇게
남의 것을 무조건 가져오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도적질, 강탈-> 악한행위이다.
-
그
외에 한 나라의 왕이 전쟁시나 필요한 경우에 하는 것을? 징발한다고 한다.
-> 예수님의 왕권을 표현한다.
2)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한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갈 때는 자신이 타고있던 짐승에서 내려서 걸어서
들어갔다. 오직 왕만이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갈 때 짐승을 타고 들어갔다.
그 모습이 열왕기상 1:33 다윗이 왕위를 솔로몬에게 양위하면서 “너희는 내 아들 솔로몬을 내 노새에 태우고 기혼으로 인도하여
내려가라”고 말씀한다.
-
마태는
이 사건을 해석하기를 4절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적고있다.
. 마태복음에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말과 그 유사구가 10번 정도 나온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
*
왜
마태는 그것을 그렇게 강조했는가?
. 마태는 구약성경에 대해서 매우 박식한 학자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했다.
그래서, 구약에서 그렇게 예언하였고 기다리던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3)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환호하며,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
위에 깔았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환영했다. 왕에게 대한 예의이다.
4) 9절, 무리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히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였다.
다윗의 자손: 다윗왕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오신다. 다윗왕과 같은 왕/메시야가 오신다.
->
이런
이유들로, 종려주일이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한 날이다.
* 그래서 그 예루살렘성의
현장 분위기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운집해서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 라며 소리쳤으며,
10절 “온 성이 소동하였다”온
성의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호하며 열광했다.
*
반면에
그 환영을 받는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그 열광적인 분위기, 승리에 도취된 분위기에 걸맞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다.
예수님은 왕이나 개선장군같은 당당하고 위엄과 영광에 찬 모습이 아니다.
-
예수님은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으시다. 열광적인 분위기에 조금도 휩싸이지 않으시고, 폭풍 속의 고요함으로, 그런 분위기와 관계없이 초월하여 계셨다.
-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영광의 상징인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탔다.
*
왜
나귀인가?
- 말: 전쟁터에서 용감무쌍하게
달리는 짐승은 말이고 승리와 권위와 명예의 상징이다.
전쟁에서는 속도와 신체적 우위가 매우 중요하다. 말은
당당하고 멋있다. 승리자의 모습이다.
-
나귀: 나귀는 전쟁터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동물이 아니다. 나귀는 키도 작고
초라하다. 잘 달리지 못한다. 그것도 나귀새끼이다.
-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정쟁 중에 나귀를 나타나고 나타나면... 평화의 사절이고 항복의 표시이고 겸손의 상징이다.
- 우리 주님은 죄악과
싸우고 사단과 싸우시기 위해서 하시기 위해서 늠름한 말을 타고 칼과 무기를 가지고 정복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초라한
나귀를 타고 오셨다.
.
힘과
권위가 아니라, 희생과 겸손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오셨다.
-
이
세상의 전쟁의 영웅들-징기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는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승리하지 못했다. 무력이 칼이 그 당시에는 강해 보이고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은 망하고 말았다. 칼과 무력은 세상을 오히려
더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뿐이다.
-
나귀가
어리석어 보이고, 사랑이라는 것이 무기력해 보이고, 겸손이라는
것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랑이 승리하고, 겸손이
이기고, 부드러움과 온유함이 마지막에 웃는다.
-
결국은
우리 주님의 겸손과 연약함의 법칙이 승리한다.
결: 우리 주님께서는, 종려주일에 죄인을 구원을 위해서 낮은 모습, 겸손의 모습, 평화의 사도로 오셨다.
우리 주님의 온유함이
파괴적인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잔혹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폭력적인
죄악을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도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닮아가고, 내 자신을 낮추어서 영혼을 구원하고
이 세상을 부드럽고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원한다.
-
우리
서로 낮아짐과 부드러워짐을 연습하고 이루자.
-
혹시, 아직도 저에게 교만함, 권위스러움이 남아 있나요? 아직도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무게잡고 영적군림을 하고 목에 힘을 주는 그런 면이 있나요? 아직도 많지요?... 제가 주님처럼 더 낮아지고 좀 더 무능해지고, 더 약해지고, 힘을 뺄테니, 우리같이
낮아지기 연습합시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만 해도 우리 인생의 시간이 모자랍니다.
전쟁과 미움과 갈등과
폭력이 가득한 이 세상에 평화를
심고 화평를 만드는 사람, 종려주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