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친구로
지내기”, 생존을 위한 두려움”, 왕하 20:1-3, 강인국목사 2018.5.6
사람의 감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수치
등이 가장 대표적인 인간의 감정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런 감정들을 주신 목적이 있다.
희락: 즐거움은 만족감, 성취감으로 오는 행복한 감정이다. 창조시의 감정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안에 있을 때 참된 기쁨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분노: 어떤 일이 나의 기대와 표준에서 벗어날 때 분노한다. 분노를 주시는
것은 나의 잘못된
것과 실패를 수정하라는 뜻이다.
슬픔: 가족이나 아는 사람에게 사건이 생기거나 헤어질 때 슬프다. 그것은
서로가 곁에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고 주신 감정이다.
수치감: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하면 수치를 느낀다. 사람으로
하여금 바르게 살라고 준 감정이다. 몇년 전 미국에서 지성인들이 비도덕적인 홈페이지에 가입했다가 그
홈피가 hacking을 당하여서 이름이 알려지는 바람에 수치로 자살하였다.
두려움: 두려움은 인간 타락으로 가지게 된 최초의 감정이다. 두려움의 목적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자신을 잘 방어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리고, 참
평안이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고 준 감정이다.
“지렁이도 밣으면 꿈틀댄다.” 말은
미물도 자신의 존재가 공격을 당할 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때에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은 우리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음으로 인하여 오는 두려움들을
생각해 보자.
1. 질병에 대한 두려움
본문 왕하 20: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는
중병에 걸리게 되자 통곡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였다. 병도 그냥 병이 아니라 생명이 걸린 중병에 걸렸다.
사람은 중병에 걸리면 순식간에 쇠약해 지고 자신이 죽게될지 모르는 두려움이 생긴다.
사람은 병이 들어 죽으면 자신의 존재의 기쁨과 가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나쁜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2017년
한국에서는 메르스(중동호흡기전념병)에 170명 감염되고 49명이 죽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니까, 그 질병을 보균한 사람과 접촉한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
사람이 탔던 비행기, 버스, 전철까지 수소문하는 대국민 보균자
색출작전을 시행하였다. 그로 인하여 한국 전체는 패닉에 빠져서 외출하는 사람이 엄청 줄었다고 한다.
14세기
이후에 유럽에 흑사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1~2억 정도였고, 1910년에
있었던 스페인 독감으로 전세게적으로 5000만명이 죽었다. 급성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대단하다.
그래서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 내가 살기 싫어도 백살을 넘게 살 수 있다. 내가
죽어도 다시 살려 놓는다. 건강관리를 잘 하면 100세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다리와 허리, 뼈와 근육이
매우 중요하다. 치매보다도 오히려 허리 다리가 약해서 걷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본문의 히스기야는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받으니, 그리고 죽는다는 사형선고를 받으니 그 마음이 어떨까? 눈 앞이 캄탐하고 한 없이 쇠약해졌다.
하지만, 그는 절망만하지 않고 간절히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눈물을 보고 그를 낫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병든 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라파”, 나는 치유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께서는 병든자를 향하여 내가 치유자다, 내가 너희 모든 질병을 고쳐주는 의사라며, 병든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기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하신 사역이 무엇인가?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자를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을 치유하셨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향하여 오는 혈루병 여인, 중풍병 환자,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 심지어는 죽은자도 살리셨다. 하나님이 하시면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질병의 순간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절호의 기회이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대에도 믿음의
기도로 불치병들이 치유함을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도 많이 경험하였고, 이 강목사도 만성적인 병들, 현대의학으로는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병들이 치유됨을 경험했다.
어릴 때부터
있었던 만성적인 연약함과 콧병, 30대 중반에 당뇨병, 만성설사병, 엘러지, 공황장애 등등, 이런
질병을 현대의학이나 약물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
질병이 내 온몸을 짓누를 때, 바로 그 순간은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할 기회이다. 위기는 기회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몸이 약한 분들과 환자와 어르신들을 사랑과 진심으로 돌보아야
한다.
심재숙권사님
아침에….
질병이 있는 분들은 육신도 약하고, 마음도 정신도 매우 연약하기 때문에 사랑과 관심으로
특별히 케어해야 한다.
2. 죽음에 대한 두려움
히스기야는
병이 들었고, 거기에다가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청천벽력같은 통고를 받았다.
누구로부터? 이사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 결코 빈말을 하지 않는 이사야로 부터…
정말 캄캄하다. 모든 사람이 다 죽어야 하지만, 아직은 아닌데, 아직은 너무 젊은데,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아직은 어린 자녀들 재롱보는 것이 좋은데, 아직은 아내와 가족들이
보내는 시간이 좋고, 경험하고, 성취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런데 죽어야 하다니…
죽음은 우리의 마음을 매우 비통하게 만든다. 죽음은 인생이 겪는 가장 큰 슬픔이요
두려움이다. 죽음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것은 사람이 당하는 가장 큰 슬픔이다.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이유는 죽음으로 진행되는 모습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죽음은 버려짐이요 소멸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라는
존재가 죽음을 통해서 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고 소멸되고,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내 기억과 추억이 소멸하고, 사랑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두려운 사건이다.
*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
우리의 삶을 참으로 진지하게 애틋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
우리의 삶을 겸손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은 너무나 짧은 인생을 살아간다. 얼마나 인생이 빨리 지나 가는지… 시간이 아까워, 늙어가는 것이 억울해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사는 것이 지겹다고 말하고,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고, 사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조금 많이 가지고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조금 젊다는 호기를 부리고 거만을 떨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죽음이후에도 무엇이 있는지 생각도 해 보지않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도 해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솔로몬은 전도서 3장에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 죽일 때가 있고 치유할 때 / 울 때가 있고 웃을 때… 젊을 때가 있고 늙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서는
11절에서, 그런데 그런 죽을 때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우리에게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이 짧은
인생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영원을 사모하라”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인생이 너무 짧고 죽을 때가 있으니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도서 12: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
우리의 인생이 흐르는 물처럼 급속하게 흘러가고 한여름의 나비처럼 살다가 죽기 때문에 “젊을
때에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말씀한다.
* 사람이 한 200 년 정도 살면 어떻게 될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생의 삶을 추구할까?
사람이 한 천년 정도 살면 어떻게 될까? 여기 계시는 아무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 찌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음을 주신 것은 두려움을 통해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우리의 생을 소중하고 겸손하게 살며, 영생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한다.
스티브 잡스
“나는 늘, 죽음은 삶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해
왔다. 죽음이 없다면 진전되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가
비록 신앙인은 아이었지만, 죽음에 대한 통찰력은 대단했다.
결: 하지만,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성도는 모든 종류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하나님께 가는 과정이요 예식이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신다(시 116:15)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라고 말하며 두려워 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생을 절제하며
살아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하시며 마음의 두려움을 주님께서는 평안으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외면하거나 멀리 떨쳐내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없다.
우리 속에 그 생존의 두려움을 친구로 삼고 평생을 동행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더 겸허하고 진지하게 살며, 하루가 천년처럼 애틋하고 소중하게
살아가자.
인생을 경외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과 자연도 사랑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 내 주위에 있는 사람, 먼 나라의 사람들, 심지어는 원수처럼 얼굴을 돌려 버리고 싶은 사람도
사랑하며 살자.
그리고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자, 그리고 영원의 가치를 추구하고영원의 순간을
사모하며 살아가자.
그리고, 죽음의 권세, 두려움을 이기신 주님을 믿고, 어떤 순간 시련과 두려움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