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리고 좇아가노라 빌
3:10-14 2016-7-17 강인국목사 미시아나한인교회
성도가 되면 예수를 믿기 이전과 예수 믿은 이후의
마음과 삶의 방식이 상당히 변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말씀했다.
“내가 예수 믿기 전에는 이랬는데, 예수 믿은 후에서 저러했다.” 지난 시간에는 “내가 예수믿기 전에는 유대주의를 신봉하던 개요
행악자였고 자랑할 것을 많이 가졌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후에는 그런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다 버렸다.” 고 말했다.
* 오늘도 바울이 예수를 믿은 후에 어떤 것이 변했는지 같이 보자.
* 본문,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that
I may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eing conformed to His death”
1.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과 순교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의 사도바울? 그는
명예와 권력과 성공을 향해서 달려갔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거기서 돌아서서 예수님처럼 낮은 길,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편안과 성공을 위해서 전 삶을 바친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그러한 행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때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예) 우리 교회의 발자취를 정리하기 위해서, 지난 담임목사님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찾아 보았다.
. 심목사의 현황: 아틀란타교회를 떠나 한국지구촌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는 감동적인 기사가 나옴.
. 그리고, 동시에 어떤 부부가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는데 이분들도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 김성은/한정민 선교사 부부와 두 딸?: 병원
원장(대학, 의과대학, 인턴, 레지던트, 초년병 의사, 긴
세월동안 이룬 자리), 이곳 저곳 단기선교 봉사, 아이티(Haiti)에 갔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부두교, 가난, 질병, 폭력이 만연한 그곳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곳은 올 곳이 못 된다'며 환경이 조금 더 나은(?) 선교지를 찾았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그 눈물과 절망의 땅으로 간다.
그의 고별인사 "그동안 바삐 돌아가던 일상속에서…. 멋진 집과 자동차, 골프, 땅, 주식, 노후대책.. 그런.. 잡동사니만
마음 속에 쌓여갔습니다. 이제 모두 불태우고 새로운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 분들이 잘 이해가 됩니까? 사실 이해하기 힘들다.
* 그렇게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본문의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본
받는다고 말한다.
바울은 부활이 있음을 분명히 믿기에 이 땅의 영광보다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부활, 영생, 천국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삶의 가치관과 목표가 변한다.
그리고, 주위
친구, 친척, 가족이 주님을 믿지않고 제대로 신앙생활하지
않으면 눈물로 복음을 전한다.
내세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삶보다 주님이 원하는 삶, 이 땅의 성공보다는 천국을
사모하고, 영생에 부합하는 가치를 위한 삶을 살게된다.
2. 12-14 절을 보면, 바울은 뒤에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한다.
* 뒤에 것들의 의미?
- 먼 뒷쪽: 지난 주에 언급한 것들: 주님을 만나기 전에 믿고, 추구하고, 자랑하던 것들을 말한다.
- 가까운 뒷쪽: 오늘 본문:
주님을 믿은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한다.
* 주님을 믿은 후에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그런 것들을 다 잊어 버리겠다는 것일까?
1) 13절, 내가 잡았다고 자부하던 것들을 잊어 버리겠다. 무엇일까? 구원, 믿음의
확신…
가령,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강할 때, 자칫 잘못 나태해질 수 있고, 한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잃지 않는다는 교리로 안이함과 나태에 빠질 수 있고,
심지어는 범죄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고, 사도로서 지도자이지만, 두려워하는 초보자의 마음으로, 상급을 붙잡는 마음으로 좇아 가겠다고 한다.
사울왕: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왕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
2) 그 동안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했던 수 많은 수고/대단한
공적/받은 시련들을 잊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행여 나의 자랑이나 나의 의가 될찌도 모르기에 깨끗이 잊어 버리고,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심정으로, 푯대를 향하여 달리는 심정으로 사역을 하겠다는 것이다.
예수님: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쉽다.
부자는 대단한 것을 이루었기에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3) 지금까지 열심히 했기에 이제 쉬엄 쉬엄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 일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내 자신을 채찍질하며, 마지막 골인지점을 향하여
달리는 육상선수의 심정으로 달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I do not
consider myself yet to have taken hold of it 라고 말씀한다. 내가 다 이루거나, 대단한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예) 이전교회 권사 피택 후: “그 동안 일 많이 했으니, 그만할래..” 바울은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도 높은 자리에 가면 변하기
쉽다. 내가 누군데, 그 동안 열심히 했으니..
. 제대 말년에 뭐 본다? 피 본다. 왜? 나 이제 그 만큼 했으니 적당히 하겠다고 하다가 실수한다.
. (고전 10:12)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So,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firm, be careful that you don't fall!”
성공했다고 자부할 때 하기 쉬운 실수이다.
. 목회자들이 이만하면 되었다고 자고하다가, 노년 또는 교회가
성장할 때에 실수를 종종한다.
성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까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도는 직분에 있어서는 은퇴가 있지만, 사역에 있어서 은퇴가 없다.
오늘을 남은 인생의 첫날로 생각하고,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