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멀리, 더 높이…” 빌 3:13-14 2016 미시아나
세계인의 축제인 2016년 올림픽이 브라질 리오에서 개막되었다. 미국 <골드만삭스 은행>의
예상: 한국은 금메달 13개로 종합 5위를, 유럽의 스포츠 분석전문업체 <인포스트라다>는 한국은 금메달 12개로 종합 8위를 할 것을 예상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13개로 종합 5위를 했는데 기대된다.
올림픽 모토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더 멀리)- faster, higher, stronger(farther)’ 이다. 이는 좋은기록을 기대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 뒤에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온 세계인이 추구해야 할 인간의 본질적 가치, 도덕적
숭고함, 교육 목표 등을 내포한다고 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는
화합, 평화, 존중, 평등
이런 메시지들이 등장한다.
올림픽이 기록 만을 중시 한다면 큰 의미가 없다. 올림픽이
싸움판이 될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서 인종과 피부색을 초월하여서 가난, 질병, 인종차별, 난민, 테러
등의 문제도 관심하고 순화시키는 시간이기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 이번 참가국에는 난민으로 구성된 팀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로 보여진다.
사람은 동물과 달라서, 표면보다 내면을 생각하고, 물질적 문제보다 정신의 문제를 추구하는 존재다.
그래서, 어렸을 때 최초로 배운 유식한 단어가 형이하학(physics), 형이상학(metaphysics) 그런 말들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형이하학 즉, 눈에 보이고 감각하는 세계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형이상학 즉, 물질세계를 넘어서
사물의 근본과 본질을 찾고, 정신과 마음의 세계를 추구하는 존재다.
본문: 사도 바울은 앞을 향해 달려 간다, 푯대를 향해 좇아간다, 상을 받기 위해 뛰어간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을 운동경기 선수로 비유한다. 그 당시도 운동
경기가 상당히 인기있었던 것 같다.
올림픽의 기원이 주전 8세기 경이고, 주전 1세기경 즉 바울 당시에 매년 4년마다 열렸다. 그 당시 이미 장거리(단거리)달리기, 격투기, 레슬링,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높이뛰기 등의 종목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과 바울 당시에 고대
올림픽과 운동경기가 보편적이었고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당시 경기는 현대처럼 안전을 중요시하고 규칙을
중요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격투기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야만적이고 잔혹했다. 격투기 규칙은 눈 찌르기
외에는 다 용납되었다. 상대방이 항복하거나, 기절하기까지
경기는 진행되었기에 경기 중에 죽는 일이 많았다. 현대 격투기도 매우 잔혹한데 당시 격투기는 비교되지
않게 잔혹했다.
원형경기장에서 노예 검투사(gladiator)들이 창칼을
가지고 생사를 걸어놓고 하는 경기는 올림픽보다 더 인기가 높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렇게 세속적인 운동 경기를 비유하여서
말씀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위대한 지도자인데, 좀 더 고상한
비유를 들지, 왜 그 당시 비기독교인들이 즐기고 사람을 자극하고 잔혹하기까지 한 운동경기를 비유로 말할까? 그리고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경기에서 상받기 위해서 뛰어 간다고 표현할까?
바울의 이런 모습은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획기적이다. 지나치게
세상의 풍조와 흥미거리를 예를 들고, 인기를 자극하는 가벼운 처사라고 비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세상적인 예화를 드는 것을 싫어한다. 성경만
말하고 설교하면 보수적이고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계신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당시 보편적이다 못해, 세속적인
소재로 비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불신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복음을 알기쉽게 전달하기 원하는 바울의 방법이다. 올림픽 모토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의미처럼, 운동경기를 비유로 메시지를 전하는 바울의 방법은 우리가 생각해 볼만하다.
경기장의 운동선수로 서 있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신앙인의 자세를 배우기 원한다.
1. 앞을 향해 좇아간다. 13절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리기를 할 때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사람은 없다. 뒤돌아
서서 달리기 종목이 있으면 몰라도…
성도는 달리기를 하는 선수처럼 앞을 향해서
달려야 한다고 말씀한다.
* 사람의 3 종류:
1) 과거형: 지난날의 추억, 화려했던 옛날, 가슴아픈
기억, 패배 등에 매임, 감상적인 사람들이 많다. .
이들 마음에는, 원망과 원한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전 정신이 약해서 우울증에 잘 빠진다.
2) 현재형: 현실주의자, 미래에 대한 꿈이나 계획이 약하고,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3) 미래형: 목표지향형, 꿈의 사람, 계획성이
있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도전한다. 역사관이 뚜렷해서 먼 후대에 까지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어한다.
*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한다. “잡으로고”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축구 선수가 공을 잡기위해 달리는 것 처럼, 목표를 보며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는 것이다.
* 공을 잡기위해
달리는 선수,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는 사람은 주위 일들에 관심을 빼앗기지 않는다.
-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욕설을 하고 야유를 퍼 붓어도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달린다.
- 호르몬이
넘치는 남자라도, 경기 중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도 한 눈 팔지 않는다.
- 체력이
다해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어도, 부상이 발생해도, 끝까지
달린다.
- 경기 영웅들의
이야기: 부상이나 경련이 일어나도 끝까지 달린 선수들이 더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 꿈을 이루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쁜 환경이 앞을 가로막고, 비난도
당하고, 유혹이 있고, 힘든 일들도 있지만, 성실하게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경기에 나가서 달릴 때 승리한다.
* 성도는
먼 후대까지 이어지는 인간 역사뿐만 아니라, 더 멀리 이 세상의 시간을 넘어서 영원의 시간을 꿈꾸는
사람이다. 현세 뿐 아니라, 내세와 영원한 나라의 가치를
위해서 달리는 사람이 고귀한 사람이다.
2. 위를 향해 달린다. 14절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좇아간다”
- 자녀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이유? 좋은 직장, 보수높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
- 열심히
일하는 목적? 부자되고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 대통령
선거의 공약? 경제-잘 살게 해 주겠다. 안전-편안하게 해 주겠다 고들 말한다
- 어디에서
잘 살고, 어디에서 잘 먹고, 어디에서 성공하고, 어디에서 편안하고 싶다는 것인가?
이 땅에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
*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위를 향해 달려간다고 말씀한다. 하늘 나라에서 받을 영생의 삶, 하나님의 평가를 바라보며 좇아간다고 말한다.
*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들: “죽으면 그만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
- 바울은, 현재에 열심히 사는 이유는 죽은 다음 천국에서 받을 상급 때문이라고 말한다.
. 때로는 이 세상이 힘들어도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며 참고 인내한다.
- 성경은
죽으면 그만이 아니라, 영생과 영벌이 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성경은
이 땅의 찬란한 영광보다, 내세의 영광은 비교할 수 없이 찬란하다고 말한다.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 성도는
이 땅에서는 적당히 살고, 손해보고 살고, 희생하며 살고, .. 그 다음 천국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살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그리스도와 기쁨과 평안의 삶을 가지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 3:1)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성도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땅이 아니라, 위엣
것을 추구해야 한다.
* 이 세상
역사가 전부라면 우리가 이렇게 살 필요없다. 마음 껏 즐기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물질 내 마음데로 쓰지 못하고(헌금하지
않으면 더 좋은 차/집/옷 탈 것이다), 큰소리도 참고, 화가 나고 참고,
하고 싶은 것 억누르며 살 필요가 없다.
예) 내가 장로, 권사, 집사, 목사가 아니라면?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 세상 후, 더 멀리…
죽음 후, 그 먼 달리기의 정점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순간이 있기에… 아픔이 있어도 인내, 욕망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도 누르고, 내 이익만 챙기고 싶지만 그래도 남을 위해서 희생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분노를 터트리고 싶지만 속으로 삭이며 눈물 흘리며 달린다.
결: 사람은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여도
절대로 만족을 하지 못하고 공허하다. 왜?
-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창조물이기에… 하나님으로 충족되지 못하면 괴롭다.
- 바울은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멀리보고 달려가자. 멀리,
더 멀리, 인간의 역사보다 더 멀리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죽음 이후 영생까지 멀리보며 달려가자.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자. 높이 더 높이, 천국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달려가서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