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행복론2-자족1”
빌 4:11-14 미시아나 2016
지난 주 말씀, 바울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지 말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바울은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았다. 어떻게 바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 주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 로마시민권(좋은가문), 가말리엘(좋은학벌), 바리새파(종교면 종교), 공회의원(권력이면 권력)에 있어서 그는 성공을 향해 달려갔다.
- 삶의 자세(빌 3장):
. 율법으로 흠이 없었다. 그는 완벽했다. 자기
관리가 엄격했다. 끝없이 완벽을 추구했다.
.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했다. 그는 “열심”이 대단했다. 기독교인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바울.
(행 9:1-2)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1]
Meanwhile, Saul was still breathing out murderous threats against the Lord's
disciples. He went to the high priest [2] and asked him for letters to the
synagogues in Damascus, so that if he found any there who belonged to the Way,
whether men or women, he might take them as prisoners to Jerusalem.”
- 사울은 이미 기독교인을 핍박하여서 피를 많이 흘렸다. 스데반을 돌로 처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손에 피를 묻히면 괴로워서 그런 일에 손을 완전히 떼기도
했다,
. 한 사람은 재판관이 된후,
첫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하고 그 길로 사임하고 스님이 되었다.
- 그런데, 어떤 사람은 피맛을 본 아귀처럼 더 많은 피를 흘리기를 좋아한다. 사울은? 후자다.
.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여전~히”: 조금도
후회나 망설임이나 만족이 없이, 더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기 위해서 기가 올랐다.
. “남녀를 막론하고 잡기 위해”: 남녀노인어른아이 “막~론하고”: 인정사정없는 냉혈한의 모습.
- 사울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피에 굶주려서 끝없는 야욕과 잔혹함으로 눈에 핏발이 선
모습이다.
. 주님 만나기 이전의 사울은 자신의 야욕과 신념을 위해서 끝없이, 쉼없이, 만족없이 달려갔다.
* 시대와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사울의 모습에는 현대인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보인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어떤 일이든 “막~론하여”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많은 것을 충분히 얻었음에도 후회나 만족감이
없이 “여전~히” 욕심에
배고픈 자의 모습으로 달려간다.
* 성경은 사람의 마음과 욕망을 이렇게 표현한다.
(잠 27:20) “음부(지옥)와 유명(죽음,패망)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욕망)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Proverbs 27:20) “Death and Destruction are never satisfied, and neither are
the eyes of man.”
*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조차도 사람의 욕망을 채우지 못한다. 사람의 욕망은
끝도 만족도 없다.
그렇게 사울은 무슨 일이든지 “막론하여” 악행을
행하고, “여전히” 배고픈 이리처럼 기독교인들을 무어뜯기
위해서 찾아 헤매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빛보다도 더 밝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
* 그랬더니 그가 그 이후에 어떻게 변했는가? 본문에 보면.. 4:11-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whatever the circumstances.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 비천/풍부, 배부름/배고픔 등 어떤 상황에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성공과 야망을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만족감없이 달려가던 사람이, 그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이든 관계없이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 자족(self-content)?
- 주어진 모든 상황을 감사한다. 때로는 고통과 시련이 있어도 감사하고 만족하다.
- 내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주심을 믿고 자족한다: 좋은차/작은차 감사, 큰집/작은
집도 감사, 좋은 음식/식은 보리밥도 감사, 건강/병들어도 감사한다.
* 우리가 고통속에서 어떻게 자족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1)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심을 믿으면, 그 하나님을 믿고 자족할 수 있다:
나에게 고통이 오면, 하나님께서
내가 고통을 이길 힘을 주시고, 주관자께서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믿는다. 시련을 통해서 나를 겸손케 하시고 정금같이 순수하게 만드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믿는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 시련 속에서 원망하지 않고 감사한다.
2) 하나님께서 나에게 최선의 것(선한 것)을
주심을 믿으면 자족할 수 있다:
우리는 최고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을 주신다.
나는 이것이 최선인 것 같은데, 하나님은 저것이 최선이라신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알맞은 것을 주심을 믿으면 자족할 수 있다.
- 다윗은 하나님의 전 건축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랬더니 다윗은 (대상 17:26) “주께서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허락하셨다” “You have promised these good things to your servant.”고 감사한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최선의
것을 주셨음을 믿었다.
-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고싶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내 삶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스티브 잡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 내가
정말 갖고싶은 그것을 주지 않을 수 있다.
- 한국 대통령들, 대단한 자리에 올랐었는데,
퇴임후 오히려 본인과 가족들이 치욕을 당한다.
속으로 “차라리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그
때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졌더라면”라고 하지 않을까?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신과 가족과 나라를 위해 최선은 아니었던 것이다.
-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시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for he satisfies the thirsty and fills the hungry with good
things.”
- 작은 집에 살고 쓴나물을 먹어도 자족하면 그곳이 천국이다. 큰 집에 살고
기름진 것으로 먹으며 원망하고 다투면 불행이다. <원망/전쟁하며
살아도, 큰집에 기름진 것 먹으며 살고싶다??>
3)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미 최고의 것을 주셨음을 깨달으면 자족할 수 있다.
예) 아합왕: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런데, 왕궁
옆 나봇의 포도원이 탐났으나 얻지 못했다.
(왕상 1King 21:4)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Ahab
went home, sullen and angry…He lay on his bed sulking and refused to eat.”
-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것/절대권력을 가졌다. 가장
만족하고 행복해야 할 자리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만족한 모습이다. 최고를
가졌지만, 자신에게 없는 작은 포도원 때문에 불행하다.
* 부부가 살면서 왜 다투는가? 상대방이 만족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
- 다투지 않는 법: 아내가 소중한 가장 큰 이유 한 가지만 생각하라. 아내가 소중한 이유?
내개인 생각: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어제저녁 8:42분 세계인구 7,452,766,152 명). 그 많은 사람 중에 단/한/사람, 나에게 와서
내 아내가 되어서 나를 바라본다. 이것만 생각하면 놀랍다. 게다가, 같이 살아줘/내 아이 낳아줘/따라줘/외롭지 않게 옆에 있어줘, 그 보다 중요한 것??
흰머리, 주름살, 찌는 살, 큰소리, 바가지??… 충분히 이해하고 자족할 수 있다. 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 남편이 소중한 가장 큰 이유? 여러분이 알아서…
- 자녀들도 마찬가지: 지금 속썩이는 자녀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이 아이가 내 가정에 태어나 준 것(74억 5천.중에서), 어릴 때
벙긋벙긋 웃어준거… 그것이면 충분하다.
- 저는 성도님들을 뵐 때, 이전에는 훌륭한 신자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는 같이 하나님 믿는 것만 해도 너무 좋다. 게다가 같은
교회 성도가 되어 주신 것이 너무너무 좋다, 게다가 못난목사 따라주고 주일날 이렇게 모여서 같이 예배드릴
수 있으니 맹목적으로 좋다. 더 이상 여러분께 원하는 것 없다. 가끔
제 뒤에서 저를 비난하고 미워해도 괜찮을 것 같다.
-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다.
-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최고의 축복은 구원/영생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다. 우리는 최고의 행복자이다. 그래서, 이 땅의 작은 복들(물질,건강,명예)이 좀 부족하다고
문제될 것 없다.
- 내 삶은 죽음에서 벗어나 덤으로 주어졌고, 일생 일대의 대박, 절대 로또를 맞았는데, 그깟 십원짜리, 백원짜리 선물권 하나 주지 않는다고 마음 상해야 할 이유가 없다. 주어진
것을 만족하자.
4)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며 나에게 사랑을
베푸셨기에…
-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보혈을 흘리며 죽으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셨다. 그런데, 너무나 작은 문제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마음 상할 필요가 없다.
-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약한자 편에 서시고, 고통받는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우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결: 만물의 주권자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으면,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다. 만물을
다스리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자족하셔서 행복한
성도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