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 마 11:28-30, 강인국목사, 2023. 3. 12.
건축가가 건물이나 다리 등의 건축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그 건축물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가를 계산해 내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무거우냐 가벼우냐, 무게에 대해서 민감하고,
고민하고, 심지어 논쟁하기도 한다.
소포는 무게에 따라서 배송료가 달라지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무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약 우리의 인생을 무게로 계산해 본다면 어느 정도일까?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다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느끼는 그 인생의 무게에 따라서 인생의 의미와 목표도 달라질 것이다.
인생의 무게를 무겁게 여겨지는 사람은 아마 인생을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반면에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하면 인생을 대충 살고, 쾌락적으로 살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인생의 무게는? 1. 인생은 별 것 아니다. 즐기며 살자. 2. 인생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 3.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견딜 수
없다. 4. 인생은 허무하다, 의미없다.
첵코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하고 미묘하다, 그 이유는 무엇이 더 긍정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게 있어서 미래의 무게는 무겁다. 반면에
현재의 무게는 가볍다… 인간의 삶은 이 두 가지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인생은 허무할 정도로 가볍다, 반면에 매우 중요한 의미도 있다. 반면에 짐이 아주 없다면 인생은 공기처럼 가벼워져 날아가 버릴 것이다.>
비평가들은, 밀란 쿤데라는 이 책에서 인간의 삶이 의미없다고
한탄한다고 말한다.
나의 해석은 다르다. 밀란 쿤데라는 인생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을 가슴 아파하며 역설적으로
하는 말이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거움이라는 단어와
가벼움이라는 단어를 대비시키며 말씀한다.
무거움이라는 단어는 수고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인생을 대변하는 말이다.
지난 주까지 본문을 가지고 세 가지 동사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렸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들이여… 1. 내게로 오라. 2. 내게 와서 쉬어라. 3. 나로 부터 배우라고 하셨다. 우리는 배우라, 공부하라고 하면 겁부터 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겁내지 말라는 의미에서 3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 그러니 걱정말고
배우라.
* 먼저, 쉽다는 말을 생각해 보자.
- 구약의 율법들, 제사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인내하지 않으면 단순히 읽는 것도 쉽지 않다.
. 하지만, 주님의 진리는 이해하기 쉽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기 위해 머리 싸고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 오, 그 구원의 단순성이여… Oh, the simplicity of Salvation.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의 초청에 응하면
구원을 얻는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는 참으로 쉽지요?
이것을 깨닫기 위해 밤을 새워 공부할 것 없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는 가볍다고
말씀하신다.
- 그 동안 사람들은 무거운 종교적인 율법과 관습들을 어깨에 메고 힘들게 종교생활을 했다.
- (마23:3-4)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은 무거운 짐을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지 아니한다고 탄식하셨다.
. 바리새인만 무거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는 것이 아니다, 모든 유대 지도자들/ 모든
종교가 다 그렇다.
. 세상의 종교는 사람의 어깨에 무거운 율법과 규칙들을 가득 지운다. 몇십년
혹독하게 수련하고, 도를 닦게 한다.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행과 수도를 하고, 율법을 지키게 한다.
- 하지만, 주님의 진리는 가볍다.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고행하고 율법들을 지킬 필요가 없다.
* 오, 가벼운 구원의 여정이여…
(로마서 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행 16:31)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어려운 수련이나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얼마나
쉬운가?
* (요8:32)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주님은 우리를 무거운 율법들과 관습들과 의식으로 부터 자유케 해 주시기 원하신다.
. 주님은 우리를 사악한 사단의 올무와 권세, 모든 진노,
저주, 죽음의 권세로 부터 해방시켜 주신다.
. 주님의 진리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볍게 하고 자유를 준다.
** 그런데, 사람은 쉬운 것은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고, 가벼운 것은 중요시 하지않는 경향이 있다.
. 진리가 쉽고 가볍다고 해서 무가치 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서 누군가가 엄청난
희생을 치루어 주었다.
- 인간의 역사는 그 동안 군주제, 독재 체제, 공산주의
체제 등을 거치며 엄청난 피를 흘려왔다.
. 자유와 평등과 인간 존엄이라는 기치를 내 걸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피 흘리며 싸워 온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 풍성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 프랑스 혁명, 영국의 시민 혁명, 미국의
남북 전쟁,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등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준 수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이 풍성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죄악과 저주로 부터의 자유, 그 자유의 값은 주님께서 치뤄 주셨다.
. 주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두렵고 무거운 저주와 진노의 값을 치루어 주셨다.
. 그것을 깨달으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그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너무 감사하고 좋다.
**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주님을 믿는 이
신앙생활 조차 거추장스러워 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 창공을 높이 나는 연(kite)이 생각하기를, 하늘을 더 높이 날고싶다. 그런데,
보니 이 연줄이 나를 붙들어 메고 있구나, 이 줄을 끊어 버리면 더 높이 더 자유롭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줄을 끊어 버렸다. 어떻게 될까? 자유롭게 창공을 날던 연은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파괴되고 말았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된 자유함을 얻는다.
성도는 자유인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종이다. 자원하여서
예수님께 자신을 바치는 종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하고 방종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주님을 위해서 포기하고 주님께 양보하고 맡길 때 참된 자유가 있다.
** 우리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쉽고 가벼운 것은 없다. 인생들은 죽기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것이다.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주님 안에서 가벼움과 자유함을
느끼고, 참된 평안과 쉼을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