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언 4, “버림받는 예수, 취함얻는 죄인”, 마 27:46-49, 강인국목사. 2022. 3.20
사람들은
종종 서로의 말에 대해 오해한다. 제가 상당히 젊을 때 목사로서 예배를 인도하면서, 찬송가 몇장(가령 110장)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피아노
반주가 나오는데 내가 말한 찬송가 110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떡하지? 라며 당황하며 우물쭈물 하는데, 같이 예배 드리던 성도들이 일제히 그 반주자를 따라서 찬양을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허겁지겁 그 찬송가를 찾아서 불렀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분명히 찬송가 110장을 부르자고 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의 경상도 발음 을 잘못 듣고 그 찬송가를 불렀을까? 아니면, 나는 110장을 부르자고 말한다는 것이 찬송가를 잘못 말했을까? 이런 소통의 실수는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일어난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오해가 나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하시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며 소리치셨다. 그런데, 그 주님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주님의 외침을 오해했다.
* 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들.
첫째는, 당대사람: 47절에 보면, 거기
섰던 자가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라고 오해한다.
엘리는
히브리어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마가복음 원어: 엘로이, 엘로이
그 당시
쓰던 언어: 요한 19: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히브리어(유대인 구약 학자들), 로마어(라틴어): 로마인들과 고위층, 헬라어(그리스): 글/ 문자, 사용했다. 게다가 당시 실제 공용어는 아람어(시리아어)/
언어: 정말 골치가 아프다.
엘로이: 엘리야의 아람어, 히브리어로도 이해할 수 있다. 라마사박다니는 아람어..
마태는
구약신학자: 구약과의 연결을 위해서… 시편의 원어 사용 가능성이 있다.
- 탈무드에 의하여, 당시 유대인들은 어려움에 처할 때 엘리야를 부르면 엘리야가
와서 돕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하니까, 그 유대인은 선입견으로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라고 오해했다. 또 다른 사람은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는지 보자” 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엘리야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
둘째는, 후대사람: 그 외침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이다. 그래서 그는 메시야로서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가 있다.
*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 그는 임마누엘 칸트를 연구해서 철학박사를 받고, 예수의 생애연구로 신학 박사가 되어서 목사가 되어서 목회도 하였다. 바흐
음악 연구한 오르간 연주자로서 유럽을 순회하며 선교비를 모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30세 되던 해에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일생동안 의료 봉사를 하였고 그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
슈바이쳐 박사는 젊었을 때 자신이 쓴 논문 <예수의 생애 연구>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므로서 메시야로서 실패했다고 썼다. 그런데… 그가 의료선교사로 헌신할 때는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간 그 희생과 봉사의 길을 걸아가야 한다면서 밀림에서 자신의
전 삶을 받쳐 봉사했다. 아마 젊어서 논문을 쓴 그 이후에 믿음의 회심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셋째는, 후대인들의 오해가 있다.
주님께서는
신성(하나님의 성품)과 인성(사람의 성품) 둘 다를 가지고 계시다. 주님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신
것은 주님의 인성, 주님도 사람이라서 내 지른 소리다라고 해석한다.
저는 어릴
때 부터 이 해석을 들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은
순교자들이 극한의 고통을 당하면서 죽었지만 이런 원망의 비명을 지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자께서 어떻게? 그것이 제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의문이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내 나름대로 주석들을 참고하면서 그 뜻을 연구했다. 그 중에 일본의 신학자가 쓴 주석에서 발견했다. 그것을 읽고 너무 좋아서 한번 번쩍 뛰었던 기억이 있다. 40년전 일이다.
사실, 간단한 것인데, 선입견이 들어 있으면 잘 깨닫지 못한다.
* 성경해석의 법칙 중의 하나는 그 말씀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에 자주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셨고, 암송하셨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해서 시편 22편을 암송하신 것이다.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
시 22편이 무엇이기에, 주님은 그토록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 시를
음조리고 계실까?
(시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
(시22:14)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
(시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
이 시의
저자는 다윗이다. 다윗은 엄청난 고통 중에 있을 때 이 시를 썼고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 드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두렵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다윗은
주님 오시기전 약 1,000년 전에 이 시를 썼다. 그런데, 신약 사람들이 보니까, 이 시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는
생생하게 표현한다고 하여서, 이 시를 ‘고난 당하는 메시야 예언의 시’라고 부른다. 이 시는, 마치 다윗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자세히 적고 있다.
* 시편 22편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비교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 실제로 군중들이 그렇게 주님을 조롱하고 비웃었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습니다” -> 로마병정이 예수님의 죽음 확인을 위해서 찔렀더니 물과 피가 쏟아졌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
“개들이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 십자가에서 양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신 주님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한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 로마 군병들이 실제로 주님의 옷을 가지기 위해서 제비를 뽑았다.
* 주님은 시편 22편을 읽고서, 자신이
당하실 그 모든 고난을 이미 다 아시고 계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시편 22 편을 암송하시면서, 주님의 고난에 대한 모든 예언이 성취됨을 선포하셨고, 주님께서는
이 시를 통해서 십자가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그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자세하게 표현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시편 22편을 읽으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떤 고난을 당하셨는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계셨는지, 어떤 절망감과 고독감과 고통을 맛보았는지
알 수 있다.
*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
이사야 53: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철저히 버리시는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주님께 담당시키셨다.
주님께서 철저히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취함을
얻었다.
2)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철저히 고통 중에 버려 두시는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하도록 버려 두심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은 내가 십자가에 메달려 당해야 하는 고통이요 비명의 소리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내 대신에 최악의 고통을 당하셨고, 내 대신에 극한 두려움으로 비명을 지르며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취함을 얻었다.
나를 위해서
온갖 고통을 당하시고 큰 소리를 외치시며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그 주님을 믿고, 그 주님을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