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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를 모르는 여인이여..."
본문
마태 15:21-28
설교자
강인국목사
분류
날짜
2022-05-08

                       “수치를 모르는 여인이여”,  마15:21-28, 2019, 5월 강인국목사 

 

 

오늘 말씀의 제목은 “수치를 모르는 여인이여” 라는 불완전한 문장이다. 

오늘은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날이다. “어머니, 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따뜻하고 포근한 단어는 단연코 “어머니”라는 단어일 것이다. 

어머니, 생각만 해도 우리의 마음은 마음은 따뜻해지고, 눈 주위가 촉촉이 적셔진다.  

어머니, 입으로 읍조리면, 우리 마음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고향산천을 향해 달려간다. 

특별히 한국에 어머니를 두고 오셨거나 한국에 어머니의 산소를 모신 분들은 지금, 이 인디아나를 떠나서, 시카고 공항이나 LA 공항을 거치지도 않고, 직행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른 곳에 계시는 분들은 그곳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세계 언어 중에 어머니란 단어에 보면, 대부분 (M)자 들어있다. 구글 번역기로 어머니/엄마, 영어(mother, mom), 스페인어(mama), 힌두어(마~), 프랑스(마만), 이탤리(맴마), 포르투갈(맘~미), 중국어(마마), 아랍어(엄~), 유일하게 일본말에만 엄마라는 단어에 M자가 들어가지 않는다(okasang), 심지어…러시아어도 (이오마) 인데….

어떤 언어학자는 말하기를 “M이라는 글짜는 아기가 처음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리 중의 하나로, 푸근하고 부드럽다.”, “M~~~~~~” 그래서 모든 엄마라는 단어에 M이 들어 가는가? 그래서, 세계 사람들은 다 한 어머니로 부터 왔다고 주장해 본다. 

몇년 전에 본문으로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아이들과 같이 예배를 보면서 이중언어로, 영어, 한글로 설교 했는데, 그렇게 Bi-lingual로 설교하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본문으로 다시 말씀을 전한다. 오늘 본문에는 한 여인이 나온다. 주님은 그 여인을 매우 칭찬한다. 28절에 보니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주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다” 라는 칭찬을 듣는 것 보다 더 놀라운 칭찬이 있을까? 

그런데 이 여인이 그런 칭찬을 듣는다. 유명한 여인? 똑똑한 여인? 미인? 지혜로운 여인? 

아닌 것 같다. 보기에 초라하고, 이름없는 여인이다. 게다가 가나안 족속이다. 가나안 족속은 유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 이 여인은 어떤 사람인지 보자.

22절, 이 여인이 주님을 향하여 “소리질러 가로되...” “주님, 제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 

 

1. 이 여인은 수치를 모르는 것 같다.

이 여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정숙하고 예절바른 여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인은 수치도 모르는 것 처럼, 자신의 딸을 치유해 달라고 소리친다. 

당시 여인들은 남자들이 있는 곳에 갈 수 없었다. 여인이 남자들이 있는 장소에 가면 큰 결례요 공개적인 모욕을 받는다. 게다가 그 여인은 사마리아 여인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무시하고 경멸하였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교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런 사정에 관계하지 않고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쳤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이 여인도 한 때 소녀였다. 한 때는 부끄러워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했고, 수즙음으로 말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부모로 부터 정숙함과 조신한 행동이 무엇인지 예절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부끄로움과 고상함을 버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행동했다. 

 

2. 이 여인은 모욕감을 느낄줄 모르는 것 같다. 

예수님은 그 소리치는 여인을 향하여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지금 한 가련한 여인이 와서 도와 달라고 하소연하는데, 주님은 그 여인의 말을 완전 무시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주님께 소리친다. 

이에 제자들이 한 마디 한다. “예수님, 저 여인이 너무 시끄럽게 굽니다. 보내 버리시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한 술 더 뜨서 그 여인을 모욕하셨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왔다. 너를 위해서 해 줄 것이 없다”(I have no business with you). 마치 우리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래도 그 여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주님께 다가가서 무릎꿇어 간청한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가련한 여인을 향하여 더욱 가혹한 말을 하신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 그 여인을 개로 비유하며 상처를 주시기로 작정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여인은 조금도 상처받지 않고 말한다 “주님,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개처럼 천한 인생임을 인정하며, 더욱 더 주님께 은혜를 간구한다.

그 여인은 딸을 위해서 어떤 상처도 받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자녀를 위해서, 어떤 무시나 모욕도 참아 낸다.

 

3. 여인은 고집스러운 사람같다.  

이 여인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는 시련의 강도가 커질수록 더욱 자신을 낮추며 주님께 다가간다. 

여인은 예절도 모르는 여인처럼 소치쳤고, 무시를 당해도 포기하지 않았고, “개” 라는 표현까지 받으며 노골적인 모욕을 당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자녀를 위해서, 어떤 무시나 위험한 일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25절 “주여 저를 도와 주옵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였나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망신스럽다. 숨기고 싶은 진실이다. 딸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기괴한 모습으로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옷은 찢어져서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날 것이고, 옷을 벗고 다니며 집안 망신을 시킬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체면보다 딸이 치유함을 받고, 건강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 여인 수 많은 사람들과 예수님 앞에서 자신과 딸의 치부를 드러내며 주님께 간청한다.    

이 여인은, 수치도 모르고, 모욕감도 느낄 줄 모르고, 고집투성이의 여인이다. 

* 그런데, 주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라며 최고의 칭찬을 하셨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겉모습이나, 성품이나, 민족성을 보지 않고, 자녀를 위한 사랑으로 자신의 부끄러운 감정, 자존감 모든 것을 감수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시고 그렇게 칭찬하셨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2천년 전의 한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오늘날도 똑 같다. 세월은 변해도 어머니의 사랑은 변함없고, 인종과 피부색은 달라도 어머니의 마음의 색깔은 똑 같이 아름답다. 어머니의 사랑은 문화인이나, 미개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국인이나 미국인, 멕시코인, 인도사람이나 상관없이 위대하고 아름답다.

자녀를 위해서 온갖 희생하며, 이제 세월이 흘러서 그 머리에는 흰 서리가 가득하고, 머리카락은 빠져서 듬성듬성한 어머니들이여... 얼굴은 윤기도 없어지고 주름살이 늘어나고,… 덩그러니 빈 껍데기만 남은 어머니들이여…, 

이 세상 모든 어머니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 말씀을 맺겠습니다.  

22절에 이 여인이 주님께 와서 말합니다 “주님, 제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 

여인에게 딸이 있다. 이 여인은 어머니인 것이다. 여인은 어머니라는 그 한가지 이유로도 위대하다. 

Love is blind 라는 말이 있다. 사랑은 장님이다는 말이다.  

그렇다.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기에, 수치도 볼 줄 모르는 장님이 되었다. 

그렇다.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기에, 자신이 무시받는 것도 모르는 무지랭이가 되었다. 

어머니들은 자녀를 사랑하기에 두려움도 모르는 고집장이가 되어서 죽음을 향해서도 그냥 달려간다. 

어머니의 사랑은 곧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원하신다. 

 “수치를 모르는 여인이여…”는 불완전 문장이다. 이제 완전한 문장으로 만들어 보자. 

 “수치를 모르는 여인이여, 그대는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모욕감 느낄 줄 모르는 여인이여, 그대는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여인이여, 그대는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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