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뉴스에, 어떤 남자가 한 여인과 데이트하다가 그 여인을 살해했다.
그 남자에게 주어진 형량은 5년 징역형이다. 이유는 술로 인한 정신미약 상태에서 우발적 범행했기 때문이란다.
꽃다운 여인이 채 꽃을 피워보기 전에 생을 마감했다. 그 여인의 아버지는 “이게 정의냐, 한국의 법이 내 딸을 두 번 죽였다”고 절규했다.
용서하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범법자에게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는데,
일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피해자에게 용서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피해자가 용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의 잘못을 쉽게 용서해 주면 그 사람은 더 큰 범죄를 양산할 수 있는데 과연
용서가 답일까?
범법자는 안하무인으로 반복적으로 악을 저지르는데,
그 악인에게 용서의 의미는 무엇을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씩 용서하라신다(마태 18). 이 말씀은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인데 무슨 의미일까?
첫째, 용서는 성도가 짊어져야 할 일생의 숙제요 씨름임을 말씀해 주신다.
성도가 주기도문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신 것 처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암송하듯이,
성도는 일생동안 용서하기 애쓰고,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용서는 사회법이 아니라, 성도 각자에게 주신 마음의 법이다.
세상과 성경에는 엄격한 법률이 있다.
성도는 법의 문제는 법에게 맡겨야 한다. 용서는 각자의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의 법이다.
성도의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성도의 마음에 정죄나 미움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셋째, 용서는 가해자(범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법이다.
사람은 살인, 폭력(성, 언어적, 육체적) 등의 충격적 사건을 경험하면 그것을 잊어 버리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PTSD(외상후 장애)로 사람은 일생동안 나쁜 기억의 감옥에 갇힐 수 있다.
누에가 실로서 자신을 감싸고 가두듯이,
사람은 나쁜 기억과 분노로서 자신을 가두어 버릴 수 있다.
큰 빚을 탕감받았던 종이 다시 감옥에 갇힌 것은,
임금이 그를 가둔 것이 아니라 그 종 스스로가 자신을 가둔 것이다.
누에가 껍질을 벗고 나오듯이,
성도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나쁜 기억과 분노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용서는 분노와 악몽의 감옥으로 부터 나 자신을 자유케 하는 것이다.
용서는 나 자신을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것이다.
용서는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실수와 오해, 갈등과 미움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동안 주님의 용서가 필요하고, 서로를 향한 용서가 필요하다.
용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의 숙제이고, 성도의 삶이다.
(강인국목사,
202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