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행복론 (6),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의 철학자들은 정신의 행복에
대해서 많이 말했다. 하지만, 당시 로마 사회는 일반적인
현상은 물질 추구와 권력 추구와 쾌락을 위해서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그래서, 당시 로마 사회는 역사상 가장 부도덕하였고, 육체적 쾌락과 탐욕을
즐기는 타락한 사회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로마 사회와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행복을 논하실 때 항상 하나님으로 귀결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하셨는데,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고 하셨는데 위로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고 하셨는데,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하셨는데 갈급함을 적셔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복을 표현하는 빙법은 다르지만, 그 복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있어서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약의 복들을 보면 상당히 물질적이고 현세적이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성읍에서 복을 받고 들에서 복을 받고,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들은 다분히 물질적인 복을 보여 준다. 비기독교적인 철학자나 사상가들도 물질의 해악에
대해서 경계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하시는가? 고고한 기독교의 진리가
저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현세적인 복 자체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뒷 구절들에 보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이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현세적인 복들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더불어 순종과 축복의 원리를 반복함으로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알려 주기 원하시고, 순종과 축복의 연장선
끝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이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서 주시는 복이요,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요 방법인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참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평강과 안전을 추구하고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다니지만, 이 세상의 축복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일시적이고, 오직 하나님 안에
참된 행복이 있다.
영화 <God loves all children> 이라는
영화가 있다. 엄마와 딸 아이가 어느날 홈리스가 되었다. 이
모녀는 먹을 음식도 쉴만한 집도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오직 어머니만 있으면 행복하다. 노숙을 하여도 굶어도, 아기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엄마와 같이 있는 것이 가장 좋다.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이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있고,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존재임을 알면, 우리가 때로는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슬픈
일을 겪어도 절망적인 상황들을 이겨내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강인국목사, 20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