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가 된 남자 - KAPC 46회 시카고 총회 후기
아, 나는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것일까?
KAPC 46회 시카고 총회를 개회하면서, 나는 총회준비위원장으로서
총회원들 앞에서 환영사를 해야 했다. 총회 환영사는 엄숙하게 몇 분 정도로 간략하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환영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전통적인 규례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조금 색 다르게 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했다. 감동도 없고
영혼의 울림도 없는 형식적인 인삿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진심과 의미를 담아서 말할 것인가,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왜냐하면, 팬데믹 이후에 세계의 물가와 숙박비는 고속으로 상승했다. 그러면, 총회 참가비도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되면, 총회 참가비에 비행기 요금까지 지불해야 하는 총회원들께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교회로 부터 총회 참가비용 전체를 제공받지만, 어떤 총회원께서는 교회로 부터 총회 참가비용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시기도 한다. 어떤 총회원들께는 일년에 한번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총회 참가비가 비싸지고 비행기표 값이 더 오른다면 과연
몇 분이나 총회에 편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나에게 이런 오지랖
마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 많은 고민 끝에, 나는 총회원들 앞에서 몽상가 돈키호테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거룩한 환영사 대신에 내 자신이 엉뚱한 망상가임을 고백하면서, 새로이
임기를 맡은 총회장님의 희생, 중부노회 산하의 교회들과 성도님들의 넘치는 후원들, 그리고 중부노회 목사님들의 헌신적인 수고 등을 주절주절 말씀드렸다. 그래서
내심, 미래의 총회 준비위원회도 후원금 모집을 통해서 총회 참가비를 저렴하게 책정해 주기를 원했고, 은혜와 기쁨에 촛점을 맞추는 총회가 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돈키호테 캐럭터로 환영사를 하였다.
나는 아내로 부터는 몽상가란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내 가정에서는 엉뚱한 일들을 종종 저지른다. 하지만, 나는 공적 장소에서는 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고, 누군가가 나를 억지로 대중 앞으로 밀어서 세워주지 않으면 주도적으로 일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성악에 소질이 없다.
내 66년 생애 동안 단 한번도 공중 앞에서 독창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상당한 기간 동안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지만, 아직도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불편하고 얼굴을 가리는 편이고, 예배인도 시에 찬양도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편이다.
초기 영향 (Initial Impact) 이란 말이 있듯이, 총회시작 시간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총회 분위기가 조성되기 원했다. 그래서, 내 일생 단 한번 주어진 이 시간에 팬데믹으로 힘든 중에
계시는 총회원들을 위로하고 웃음을 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독창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총회 준비기간 동안
매일 아침에 “Amazing Grace(My chains are gone)” 찬양을 바쳐 올렸더니 나의
둔한 두뇌가 그 어려운 영어 찬양을 기억해 주었던 것이다.
녹음된 찬양 연주를 준비해서 그 반주에 맞추어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 Amazing 오디오 시스템…, 이상한 음색의 연주가 널뛰기를 하며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더니 반주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아, 그 당혹감이란…, 그런 순간을 도대체 어떻게 모면 할 수 있을까? 총회원들로 부터는 내려 오라는 박수와 격려의 박수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광대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것, 끝까지 광대가 되어라. 그래서 다시 찬양 반주를 틀어 달라고 오디오
담당자에게 투정 부리듯 요청하였다. 이번에는 제법 괜찮은 음색으로 연주가 흘러 나왔다. 그런데, 이 무슨 잔인한 장난이란 말인가, 찬양을 절반 정도 불렀을 때 이번에도 찬양 반주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디지털 기계와 아널로그 음악의 상호충돌 때문으로 짐작된다. 아, 그
순간만큼은 원조 돈키호테가 무대 위에 섰다고 할찌라도 더 이상 찬양을 이어갈 배짱은 없을 것이다. 총회원들의
뇌리 속에 나는 영원히 광대로 남을 것 같다. 나를 잘 알지 못하시는 총회원들께는 내가 보편적 사리도
분별하지 못하는 짝퉁 돈키호테로 기억하실 것 같다.
회의가 끝난 후에 굳은 얼굴로 저를 바라 보시는 총회원들이 계셨다.
반면에
어떤 총회원들께서는 저의 의도를 조금 알아주신 것 같았다. 저에게 이런 말씀들을 해 주셨다: “진실로 Amazing 입니다. 끝까지
듣고 싶습니다”, “그 찬양을 끝까지 들었으면 통곡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고장난 찬양 반주 때문에 더 잊지못할 찬양이 되었습니다”, “미완성으로
마친 찬양이라서 여운이 더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고장난 찬양이 저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축제가 된 Amazing 총회입니다”, “이런 총회라면 매년 다시 오고 싶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모님들께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을 표현해 주셨고, 많은
사모님들께서는 기쁨 가득한 표정으로 감사의 말씀들을 저에게 전해 주시기에 바빴다.
나는 타인으로 부터
칭찬을 들어도 쉽게 믿지 않는 편이다. 사람들은 종종 인사 치례로 그런 말들을 하기 때문이고, 또한 나는 말 한 마디에 희비의 감정을 가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들이 저에게 해 주셨던 그 짧은 말들은 지금도 진실성있게 내 마음에 소롯이
남아있다(아, 이런 글을 쓰는 내가 더 못나게 느껴진다).
- 이 글은 미주크리스챤 신문에서 <축제가 된 총회>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