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는 곳에 비행기가 있었다
지난 5월 2일(목) 오후 2시경, 그레이스와 나는 목회자 컨퍼런스를 마치고 귀향을 위해서 맨체스터(뉴 햄프셔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시카고
오헤어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서 워싱턴 둘러스 공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발 아래로 지나가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내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교회창립 42 주년 기념 부흥회 준비상황과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해
보았다.
잠시 졸다가 눈을 떠 보니
비행기가 전혀 다른 도시인 시라큐스(뉴욕주) 공항에 내려 앉아 있었다.
워싱턴 둘러스 공항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풍이 불어서 잠시 시라큐스 공항으로 피하였고 곧 다시 워싱턴으로 갈 것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약 20분 간격으로 이제 곧 비행기가 떠날 것이니 아무도
게이트 곁을 떠나지 말라는 방송이 5시간 넘게 반복적으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보니 정비사들이 부지런히 비행기 엔진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얼마 후,
엔진 결함으로 비행기를 수리하는 중이라는 방송이 나오더니, 언제인지 모르지만 곧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둥, 우리를 태울 다른 비행기가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라는 등의 방송이 계속 흘러 나왔다.
나는 카톡으로 목자목녀들께 나의 상황을 알리며 기도를 부탁하였고, 양장로님께 강사
김인기목사님의
픽업을 부탁 드렸다. 약 8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아무래도 이곳의
호텔에서 잠을 자야 할 것 같다며 호텔 첵인을 위해 각자의 이름을 적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우리는 이름을
적기 위해서 줄을 섰는데, 비행기 수리가 이제 막 끝났으니 워싱턴행 비행기를 타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이미 시카고행 비행기는 떠났고, 워싱턴에 가면 어떤 비행기가 있을 찌 모르는 불안감을
가지고 비행기를 탔다.
밤 12시 정도에 워싱턴 둘러스
공항에 내렸다.
대합실에는 유나이티드 항공사 직원 다섯 명 정도가 나와서 비행기 수속을 도와주고 있었고,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위한 사람들로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합실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 전화통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는 사람, 예약된 직장
인터뷰에 도저히 갈 수 없게 되어서 걱정하는 젊은 아가씨, 작은 강풍 때문에 공항 대합실은
온통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직원들은 담요와 베개를 나누어 주며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대합실에서 잠을 자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 줄에 서서 기다렸고 그레이스는 전화로 유나이티드 항공사에
직접 비행기표를 문의하였다. 그레이스가 전화기를 붙든지 1시간 정도
지나서 돌아온 대답은 금요일 밤에 시카고에 도착하는 비행기 티켓이 있다는 것이었다. 운전해서 교회에
도착하면 밤 12시
경이 될 것이고 금요일 저녁 부흥회는 다 끝날 시간이었다.
나는 뱀 꼬리처럼 늘어난 그 줄을 생명줄처럼 붙잡고 한 없이 서 있었고,
그레이스는 다른 게이트로 가서 한 백인 유나이티드 직원을 붙들고 우리는 목사부부이고 교회에 부흥회가 있어서 꼭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그 직원과 같이 약 20분 정도 컴퓨터를 들여다 보며 비행기 스케줄을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또 다른 게이트로 가서 다른 직원을 붙들고 컴퓨터를 들여다 보고 오더니 역시 그 비행기표 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어 쉬었다.
그러더니 그레이스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직원을 찾아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30분 정도 있다가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이번에는 한 인도계통의 직원을
붙들고 인디폴, 디트로이트, 밀워키 등의 도시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역시 비행기표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우리가 부흥회에 참석하지 못해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제 포기하고 대합실에서
잠시 눈이라도 붙이자. 부흥회 시작 전에 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레이스는 “무슨 말이냐,
부흥회에 담임목사 부부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서 부흥회
전에 돌아가야 한다. 안되면 렌트카를 해서 밤을 새워서라도 교회에 돌아가야 한다” 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설교는 강사 목사님이 하시고,
찬양은 찬양팀이 인도하고, 성도님들은 담임목사의 부재로 인하여 더 많이 부흥회에
참석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흥회에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실 것이다”
라고 말했다.
대화를 하던 중에 그레이스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또 다시 달려갔다. 이번에는 한 동남아 계통의 직원을 붙들고 말하는 것이 보였다. 한참 동안 둘이서 컴퓨터를 들여다
보고 있던 그레이스가 손가락으로 OK 표를 만들어 보였다. 2시간 이상
서 있었던 긴 줄이 줄어 들어서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한 직원이 나를 부르는 손가락질을 하는데,
그레이스도 나를 부르는 사인을 보내왔다.
사연은 이러했다. 그레이스가 그 직원에게 이곳
워싱턴 둘러스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아니고 다른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그렇게 하면 자신이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찾아 준 비행기표는, 워싱턴에서 택시를 타고 로널드레이건 공항으로
가서,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가서, 거기에서
다시 시카고 오헤어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티켓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일행 중에 시카고로 가야
하는 다른 목사님도 계셔서 그 목사님의 비행기표도 그렇게 해 달라고 했더니, 그 직원은 정색을 하며 매우
조용히 말했다. “이 비행기표는 오직 당신 두 분에게만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베트남 여인같이 생긴 직원을 붙들고 깊은 감사의 말을 드렸다.
새벽 3시 정도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로널드레이건 공항으로 갔다. 그곳으로
가는 중에 비행기표를 보니 유나이티드 항공사 비행기가 아니라 아메리컨 항공사 비행기표인 것을 알았다. 그
직원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더욱 강하게 밀려왔다. “주님, 부지불식간에
주의 종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그 친절한 직원에게 주님께서 꼭 대신 은혜로 갚아주시고 축복해 주옵소서…”
아침 8시에 로널드레이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 라과디아로 갔다. 그리고 시카고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게이트 근처의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게이트 스크린에는 그 비행기를 기다리는 대기자 명단들이 쭉 올라가고 있었다. 무려 33명의 대기자가 갑작스럽게 생길 수 있는 빈 좌석을 기대하며 대기자 리스트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원래부터 아메리컨 항공표를 구매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과연 우리의 좌석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갈 때 비행기 좌석이 중복되어서 어떤 사람이 승무원 뒤를 따라서 가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시카고행 비행기의 개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비행기의 좌석에 앉는 순간에 안도감으로 감사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비행기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오후 1시
정도에 도착하였고, 파킹랏에 세워 두었던 자동차를 타고 오후 5시 정도에 미시아나
집에 도착하였다. 샤워를 하자마자 1분도 지체하지 않고 호텔에서 쉬고
계시는 강사 목사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부흥회 첫 시간부터 참석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여덟 시간 정도면 집에 올 수 있는 거리를, 우여곡절 끝에 스물 여섯 시간 만에 집에 도착하여서 부흥회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극적으로 저희 부부에게 비행기표를 허락해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부흥회 때마다 생각했었다. 이번 부흥회에 은혜 받아야 할 사람은 나다.
담임목사가 부흥회에 은혜 받지 않으면 누가 은혜 받을 수 있는가 라며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였었다. 그런데 급박한 사정으로 부흥회 참석의 길이 막히자 나는 더욱 더 간절하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레이스에게 믿음과 지혜의 마음을 주셔서 동분서주 뛰게 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던 성도님들의 마음을 귀하게 보셔서 그 비행기표를 허락해 주셨던 것이다.
성도님들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며 또한 부흥회를 준비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 보다 더 큰 감동과 도전으로 채워진 부흥회였다.
뜻이 있고 간절함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비행기표를 허락해 주셨다.
(강인국목사, 2019.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