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차사
함흥차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역사는 다르다고 하는데 그 말이 생긴 연유는 이러합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이가 난을 일으켜서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분노하여 함흥으로 잠적해 버립니다.
이방원은 왕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아버지 이성계를 왕궁으로 모셔오기 위해서 차사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성계는 그 차사들이 오는데로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사람이 어떤 곳에 갔는데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함흥차사가 됐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실제로 함흥차사와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창을 피하여 라마에 있는 선지자 학교에 숨어
들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부하들을 라마로 보냈습니다.
부하들은 라마의 선지자 학교에 숨어 들어가서 선지자들이 드리는 예배에 참석했는데,
그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부하들은 왕의 엄중한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가 되어서,
사울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세번이나 부하들을 라마에 보내었지만 모두 성령충만으로
사울에게 돌아가지 않는 라마차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함흥차사와 라마차사는 크게 다릅니다.
함흥차사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지만, 라마차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교회가 이런 권세를 회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고 변화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성령충만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라마 나욧 교회처럼> 설교 중에서
201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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