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인 세대의 고민과 선택 빌 1:21-24 강인국목사 미시아나한인교회
(빌 1:21-24)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사회학자들은 역사를 세대별를
나누고 그 세대에 이름을 붙여서 그 당시 사회적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베이비부머 세대, X세대, Y세대, N세대 등이 있다.
그 세대를 다르게 표현한 말 중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는데, ‘낀 세대’ 란 말이 있다.
‘낀
세대’: 베이비부머(1954~63년생) 세대를 다르게 부르는 말이다. 현재 나이 50-60대 .
‘낀 세대’(Sandwich generation): 1981년
미국여성사회학자 Dorothy Miller가 처음 썼다.
전통 존중과 개성존중이라는 두 세대 사이에서 끼이고 치어서 산다.
한국의 ‘낀 세대’: 원시 농경사회를 사는 부모와 최고로 발달된 디지털사회를 사는 자식사이에 산다.자신들은 관습과 미풍양속대로
나이드신 부모를 모셨는데,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자식 덕을
볼 수 없다.
* 동영상: ‘낀 세대’에 관한 토크쇼: .
책: <낀 세대의 재테크>, <낀
세대 리더의 반란>, 내가 낀 세대이다 보니 괜히 슬펐다.
그런데, 이 <낀
세대>란 말이 성경에 나온다. 본문 23절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였으니..”
그 둘? 첫째, 22절 살아서 복음사역을 하는 것, 둘째, 23절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죽어서 주님께 가는
것). 자신의 처지가 이 둘 사이에 끼어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
바울은 말하기를, 사람은 둘 사이에 끼어서 뭘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롬 Rome 1: 사람의 마음 속에는 불의와 진리가 서로 싸운다. 불의, 진리를 택할 것인가?
(롬 Rome 7:21)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
(롬 Rome 7:23)
“내 지체 속에서 내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서로 싸운다.
->바울은 특별히 ‘낀 세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낀 세대’이고, 모든 사람이 어떤 것 사이에 끼어서 갈등하고, 어떤 것을 선택할
찌 고민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공감하세요?
*
햄릿의 고백이 생각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많은 현대인들이 햄릿증후군, 결정장애에 걸렸다. 어떤 것을 택할지 몰라 고민한다.
예) 어떤 여인이 립스틱을 사려 감. 어떤 색을
택할지 몰라 돌아옴. 남편을 데리고 다시 갔다.
아직도 백화점을 돌며 결정을 못하고 돌고 돈다.
*
사람은 매일, 어떤 것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
커피점, 식당에서, 무엇을 마시고, 먹을까?
-
믿음과 현실 사이에 끼어서, 손해를 보아도 믿음을 택할 것인가, 현실을 택할 것인가?
-
어떤 선택은 인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어떤 선택은 작아 보여도, 바위 위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나중에 인생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
본문으로 돌아가자.
바울은 사는 것도
좋고, 죽어서 주님께 가는 것도 좋다. 이 둘 중에 선택을
하라면,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훨씬’ 더 좋다(23절). 그런데,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살아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강하게하는 일에 진력할 것이다(24절).
* 너무나 담대하고 고차원적인
고민과 선택이라서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리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
있을까? (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롬 Rome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사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그런데, 선택하라면 당장에 죽어도 좋다고 할 수 있는가?
예)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예화이다.
죽음이 가까운 어떤 권사님이 매우 연로하셔서
주님께 가실 날이 가까웠다. 그런데, 죽음이 두려워서 마음
약한 소리를 하신다. 그래서, 며느리집사가 어머니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말한다.
- 며느리: “어머니, 주님 믿으시죠? 천국에는 눈물도 아픔도
없고, 영원히 주님과 사시니 두려워 마세요”
- 어머니: “얘, 그 좋은 천국 너도 지금
나와 같이 가자”
- 며느리: “어머니, 저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있잖아요. 애들 다 키워놓고 갈께요”
- 어머니: “얘, 그 애들도 다 같이 데리고
가자”
기독교 교리와 현실 사이에 끼어서 너무나 큰 괴리로 갈등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론적으로는 천국을 믿는다면서, 실제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고, 죽음이 너무 두렵다.
* 반면에, 어떤 분은 믿음이 있고, 천국을 분명히 믿는다. 그런데, 삶이 너무 힘들고 죽을 지경이다. 바울처럼 (고후 1:8)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국에는
눈물, 미움, 갈등, 궁핍, 질병, 괴로움도 없으니, 오늘
이 세상을 떠나자.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 그것이 옳은 선택인가?
*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어려움
당할 때, 빨리 죽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능력의 종 엘리야: 그도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했지, 스스로 생명을 취하지는 않았다. 큰 차이다.
“생명을 취하여 주옵소서” 라는 말: 절망감으로 몸부림치는 소리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며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소리이다. 만물의 주권자 앞에 나를 온전히 맡기며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처절한 외침이다.
반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것: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이다. 현실도피이다. 그것은
이단적이고, 사단의 속삭임이다. 그것은 미혹의 영의 유혹이다. 뒤에 남은 자의 마음에 치명적인 슬픔과 상처를 남기는 이기적이 선택이다. 그런
유혹은 물리쳐야 한다. 자살은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아 내가 생명의 주권자가 되는 찬탈행위이다. 자살은 하나님의 도움을 거절하는 불신의 선포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배도적 행위이다.
* 특히, 바울은 천국을 다녀 온 사람이다. 천국의 실재, 아름다움, 완벽함을 맛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우리도
은혜 속에 살때, 천국을 사모하기도 한다.
- 바울은 시련을 당할 때 무엇을 택했는가, 우리도 시련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1. 장애를 만나도 포기하지 않고, 굳굳하게 그 길을 가고 사명을 다 할 것을 선택한다.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고, 믿는 자를 강하게 해주는 길을 걸어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 양광모의 시집. <멈추지 말라>
.
성도는 어떤 시련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이다.
2.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선택한다.
(고후 2Corin 1:9) “우리가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시련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도우심을 구하라는 신호이다.
결: 사람은 일생동안, 어떤 것 사이에 끼어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고, 성도는 또한 믿음을 가졌다.
어떤
나쁜 상황을 만날 때, 우리는 좌절할 선택을 할수 있고, 믿음으로 좌절을 거절할 선택을 할수 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함부로 말할 때, 내 마음이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괴로워할 수 있고, 또는 주님 믿으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친구나
사람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괴로워하고 미워할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쿨하게 용서하고 사랑으로 대해 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또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응답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할 수 있지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믿음으로 감사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 끼인 세상에서, 영원한 나라의 가치를 선택하고, 좁은길이라도
십자가의 길을 택하고, 시련의 강 가운데서도 믿음의 길을 선택하여서,
승리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