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은 위대합니다”
빌립보서 2:1-4 강인국목사 미시아나 2016년 3월 13
이승만 대통령은 각종 위기상황에서 “국민 여러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 란 말을 하며 국민의 단합을 호소하였다.
그런데, 이 말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먼저 한 말이다. 벤저민 플랭클린은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라는 말을 하면서 식민지의 단합을 호소하여서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케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하나가 되라”는 말은, 우리
주님께서 최초로 해 주신 말씀이다.
요한복음 John 17장: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아버지여 하나님과 내가 하나인 것 처럼,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22) 라며, 네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말씀하신다. 유언으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도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하나가 되라고 한다.
* 왜 주님께서, 왜 사도 바울이 그렇게 비장하게 “하나가 되라”고 강조하시는가?
1. 하나됨에는 ( )이 있기 때문이다.
사단의 권모술수는 사람의 머리로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간교하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에, 연약한 제자들을 남겨두고 가려고하니
걱정이셨다. 자녀를 물가에 버려두고 가는 것처럼 걱정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하나가 되어라” 그래서 사단의 공격과 세상이 더져 주는 혹독한 시련을 이기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 현대에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시너지란 말이 있다.
Synergy란 말은 Sun(모으다) + Energy(힘)란
말의 합성어이다. Synergy (연합의 상승효과): 서로
힘을 합하면 더 큰 힘을 내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산수는 1+1= 2 이지만, 시너지를 일으키게 되면 1+1= 100, 1,000 도 낸다. 이것이 시너지가 주는
위대한 힘이다.
* 성경은 시너지, 연합의 상승작용에 대해서 자주 말씀한다.
마 Matthew 18:19-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느니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가 하나되어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됨의 위대함이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한
마음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같이 하시고, 주님이 능력을 베푸시니, 하나됨이 위대한 것이다.
사도행전 Acts 2: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였다. 그 모임이 하나의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들이 하나되었고, 그 속에 성령이 임하시니 세상이 깜짝놀랄 <오순절 대강림>의 위대한 사건이 되었다. 저들이 변화되었고, 예루살렘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향한 복음의 문이 열리는 위대한 사건이
되었다. 비천했던 120명의 하나됨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위대한 일을 이룬 것이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기도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순전함과
간절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적예배의 중요성이고, 합심기도의 능력이고, 제가
합심기도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하나된 기도 속에 하나 됨의 위대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2. ( )을 이기고, 실패를 방지할 수 있다.
전 Ecclesiastics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시너지 효과 2번 째: 두 사람이 합하여 하나가
되면, 실패하지 않고 뜻을 이룬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일 때는 외롭고 약하고 실패하기 쉬운 존재이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하나만
있으면,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극심한
역경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 공동체는 ‘우리’ 공동체이다.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아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우리’라는 믿음의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힘을 얻고, ‘우리’ 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실족한 자를 일으키고, 하나됨을 통해서 승리한다.
* 예) 바다에, 작은 물고기들은 많은 숫자가 떼를 지어서 산다. 왜?
어류학자 “적으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고 하였다. 미물에게도
뭉치면 산다는 본능적인 지혜가 있다.
*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3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1) “( )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어떤 일이 있어도 불화하지 말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기분 나쁘고 속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 가지고 소리 높이거나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마음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마음을 서운하게 하고 자존심 상하게
하여서 우리의 하나됨과 신뢰를 깨려고 한다.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마음에 허영과 명예심을 불러 넣어서, 우리로 하여금 조금도 양보하지
않게 하여서 우리의 하나됨을 깨려고 한다.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거대한 방축이 무너지듯이, 작은 오해 하나, 다툼과 허영이라는 구멍을 통해서 하나됨을 무너뜨리고, 주님의 영광을
떠나게 한다. 다툼과 허영을 버리면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위대한 교회가 된다.
2)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 )”
겸손? 이 단어로 설교할 때, 가장 자신이 없다. 인격이 경지에 올라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겸손이라는 말이 추상적이다. 겸손?
조심스러운 모습, 낮은 자세, 고개숙인 사람?
본문이 ‘겸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라’ 이것이
겸손의 의미이다.
타인의 존재가치를 나 자신보다 귀하게 여겨라. 타인의 생각과 의견이 내것 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귀 기울여라. 이것이 겸손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 서로를 바라보면 문제가 생길 수 없다. 상대방이 나보다 낫고, 옳다고 생각하면 다투거나 주장할 일이 없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휼륭한 사람이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처지
의견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무조건 내 것만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조정민 <인생은 선물이다> “겸손은 내가 늘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교만은 내가 늘 미흡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깁니다. 겸손은 미안한 마음이고, 교만은 서운한 마음입니다.”
사단은 서움함이라는, 작은 틈 사이로 들어와서, 우리의 하나됨을 파괴시킨다. 작은 틈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 성경이 이렇게 하나됨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교수 “우리 중국사람들은
너무나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한탄하였다.
그런데, 하나되지 못함은 중국, 미국,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 겪는 문제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입장이 다르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에, 하나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들은 하나가 되라고 그렇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다.
결론: 성도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단순한 집단,
사람의 모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작은 교회지만, 하나가
되면, 성령의 도움으로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원하기 전에, 위대한 일을 꿈꾸기 전에 먼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개인은 약합니다. 하지만,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제부터 서로 낮아지기를 경쟁합시다. 서로 섬기고 봉사하기를 경쟁합시다. 그래서 하나됨을 이루어서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께 쓰임받고, 위대한 일을 이루는 교회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