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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된 간절한 마음, 치유하시는 주님"
본문
마태복음 9:1-8
설교자
강인국 목사
분류
날짜
2022-10-09

    48 “하나된 간절한 믿음, 치유하시는 주님”, 9:1-8, 강인국목사, 2022.10.9,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 중풍병 두뇌의 혈관이 막히거나 터짐으로 인하여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어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말하는 것이 힘든 경우도 있다. 제가 어릴 때는 중풍환자가 많았다. 저의 할머니도 중풍으로 오래 고생하시다가 돌아 가셨고, 저의 가족 중에도 지금 중풍으로 고통 당하고 계신다.  

* 중풍병자: 본문의 중풍병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가족, 친구들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 같은 내용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좀 더 자세하게 나온다.

- 네 사람이 환자를 침상에 눕힌채로 들고 예수님께 찾아왔다. 그곳에는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다려서 만날 수도,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줄로 묶어서 방에 계신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냈고, 주님께서 그 환자를 치유해 주셨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용을 표면적인 사건과 대화만으로는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환자를 치유하셨다.

 그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중풍병자와 그를 메고 온 네 친구들?

** 그들이 무슨 믿음을 가졌기에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환자를 고쳐 주셨다는 것일까?

1) 그 중풍환자: 그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아무 희망없이 누워 있었다. 그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꿈에 가위 눌린 적인 있는가? 움직여야 하는데, 도망가야 하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할 때의 그 답답함…. 그런 고문이 어디 있을까? 그런 마음 아닐까?

 

그 환자는 우리가 말하는 신학적 의미의 믿음, 기적을 부르는 위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면, 환자는 주님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환자는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사람이 나를 한번만 만져 주면 낳을 것 같아하는 단순하고 간절한 마음을 가졌다.

주님은 그의 그 간절한 소원과 같은 믿음을 보시며, 그를 치유해 주셨다.

 

2) 그리고,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친구들인지, 이웃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를 메고 온 사람들도, 그들이 산을 옮기는 위대한 믿음이나, 하나님을 믿는 내공에서 나오는 위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은 단순하게 마음을 합해서 그 환자를 메고 왔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이 앞을 막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렸던 것이다. 그 길은 도저히 주님께 다가 갈 수 없는 멀고 험힌 길이다

-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그 구멍을 통해서 환자를 주님 앞으로 내려 보냈다.

 

 - 그 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많은 난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안돼, 할 수 없어 라며 핑게하지 않았다.

 -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그 일을 해 내고 싶었다. 그래서 지붕을 뜯어내는 초강수를 두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평범함을 뛰어 넘는 독특한 생각이다.  돈키호테식의 믿음?

-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할 수 없다뭘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쉽게 절망하고 포기한다.

 

- 그 정도의 열정이면 주님께서 감탄할 만 하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갈구한다면 체면도 버리고, 장애물과 위험을 무릅쓰고, 전심으로 주님께 달려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 마 11:12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포기하지 말라, 열정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라, 예수 안에 참된 소망과 치유가 있다.

 

* 나는 여기에서 믿음의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과 역할도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한다.

- 교회는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 성도가 주님의 사랑을 가장 먼저 실천하고 현장이다.

. 교회는 같이 더불어서 한 마음으로 기도, 찬양, 예배하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 교회는 서로를 위해서 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곳이다.

. 주님은 그렇게 한 마음으로 더불어서 돕고 사랑하는 곳에 나타나셔서 은혜를 베푸신다

 

**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에게 예수님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 3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 6, 예수님 께서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고 하셨다.

- 병고침을 받기 원해서 찾아온 사람에게네가 나았다, 일어서라, 침상을 들고 집에 가라.. “ 등 그런 말씀을 해 주어야 하는데…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 동문서답?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문현답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간청과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해답을 주셨다.

 

** 이것은 신앙 생활의 우선 순위와 기독교의 본질을 보여준다. 2가지...

1) 주님께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신 이유를 설명하시기를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메시야 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믿는 것이다.

 

- 요한복음 6:20, 무리들이 예수님께 묻되예수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 예수께서 대답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 주님은 사람들이 어떤 기적이나, 어떤 봉사의 일이나, 병 나음이나 그 모든 것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본문의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중풍병이 치유함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2) 그리고, 환자는 육신의 병 나음을 위해 왔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셨다.

우리 육신의 모든 문제보다 영혼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 중풍병자가 몸이 낫고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몇년 있으면 그 몸은 다시 노쇠하고 병들고 죽는다. 무엇이 중요한가?

- 사람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을 얻는 것이, 중풍병자가 기적적인 치유함을 얻는 것 보다 중요하다.

- 사람의 육신의 모든 문제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세상의 모든 일들 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영혼의 문제 해결이다.

 

: 우리 모두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중풍병자이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철저히 불가능하고, 정신과 영혼이 마비된 존재이다. 주님은 그런 우리를 돕고 온전케 만들어 주기기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일어설 수 있어.. 하는 단순하고 간절한 믿음을 가지자.

 

우리 모두는 세상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좌절하고 넘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일어서게 만드는 힘과 용기가 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있는 믿음의 친구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믿음의 가족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주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만져주고, 용기를 주고,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서, 서로 온전케 되기를 소망한다. 


주제선택:
  • 제목"양과 이리 떼"  
  • 본문마태복음 10:11-20
  • 히트158
  • 설교자강인국 목사
  • 설교일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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