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40, “좁은문 앞에서 망설이는 그대에게” , 마 7:13,14, 강인국목사, 2022.8.7
좁은문으로 들어가라란 말씀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다 알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 말씀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고민해 보는가? 성경은 성경일 뿐,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는 아닌지요?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천재적인 문학가이다. 그는 몸이 허약해서 학교를 중퇴했지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문단에
대뷔해서 수많은 작품을 썼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었는데, 그
소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에는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3명은 교회에서 목사님의 좁은문이란 설교를
듣고 좁은문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여주인공 알리사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을 멀리하는 것, 그것이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리사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도 사랑하는 제롬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좁은문으로 들아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혼의 결합을 추구하며 죽는다.
나는 그것을 읽으면서 그것이 좁은문의 의미이면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너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이성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매우
고귀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앙드레 지드가 예수님의 좁은문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고, 아니면 내가 앙드레 지드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좁은문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 좁은문의 의미?
문자적: 좁은 시골길, 산길, 위험한 길을 말할까? 또는, 좁은 대학문, 좁은 출세길을 의미할까?
* 좁은문은 무엇을 의미할까? 본문과 같은 내용이
누가복음에 나오는데, 좀 더 자세하게 나온다.
누가 13: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 25절, 좁은문의 집주인이 문을 닫으면
열수 없다. 28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하는 하나님
나라 라고 말씀한다. 그러니까 가는 좁은문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 구원의 문 임을 말씀해 준다.
그리고, 그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숫자가 많지 않다. 구원얻는 숫자가 많지 않다ㅗ 말씀하신다 .
- 구약 시대: 그 좁은 문은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의 문에서 그 그림자가 보인다.
방주의 문 밖, 넓은 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방주의
좁은문 안에는 여덟 사람만이 있었다.
- 아브라함은 그 넓고 편안한 도시, 당대에 가장 찬란하고 발달된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아무도
찾지 않고 다니지 않고 황량한 길, 좁은길인 가나안 땅으로 떠났다.
- 예수님, 요 10: 7-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나는 양의 문이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그 좁은문이 양의 문이고, 곧 자기 자신
임을 말씀한다.
2. 그 예수님은 산상수훈(마태 5-7)에서 성도들에게
매일의 삶 속에서 좁은문의 진리를 선택을 하라 신다.
팔복: 심령이
가난해 지고, 애통해 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라… 이런 진리는 일반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는 문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선택해야 할 좁은문이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작아지고 낮아지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
2. 이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서, 우리의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하는 좁은문은 무엇일까?
* 우선 넓은문/ 넓은길은 무엇인가?
1) 본문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다.
- 세상사람들이 일반으로 말하는 성공의 추구, 물질/명예/권력 추구…
- 세상 풍조를 따른다 “모두 다, 그렇게 해~~”
- 인본주의: 사람의 이성과 논리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과 두뇌는 매우 제한적이다.
* 좁은문/좁은길은 그 반대이다.
-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의로운 길, 고생이 열려도, 가시밭길이어도 가야한다.
- 내가 감당하기에 힘들고, 가난해져도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가야
하면 가는 길이다.
-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그것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가야 하는 길이다.
2) 넓은문/좁은길은?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길: 사람은 자기중심적/ 자기보호적이다(안전과
편함추구).
* 좁은문/ 길은?
-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중심적인 것을 깨라고 하신다.
마태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자신의 이기심, 욕심, 자기 본위적인 삶을 부정하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해 주라.
- 자신을 희생하여서 주님을 위하고, 타인을 위하는 길을 가야 한다.
- 고전 13: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 좁은문
- 자신의 이기적인 본성을 거스려서,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욕심과 편함을 버리는 마음
3) 좁은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순교자의 심정으로 걷는 길이다.
좁은길은 온갖 박해와 고난과 가난 속에서도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길이다.
좁은길은 온갖 조롱과 세상 유혹 속에서도 주님을 따르는 길이다.
바울은 그대로 있었으면 인간적인 성공이 보장되었는데, 그는 그 길을 버리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길을 갔다. 시련과 박해가 있는 좁은 길을 걸어갔다.
4) 또한, 좁은 길은 사람의 인격과 깊은 연관이 있다.
- 좁은문은 너무나 낮기 때문에 교만하게 고개를 바짝 들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
좁은길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기도하며 들어갈 수 있다.
- 좁은문은 너무 좁기 때문에 거만스럽게 몸을 흔들면서는 들어갈 수 없다.
좁은문은 조심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이 가난해야 들어갈 수 있다.
- 좁은문은 바늘구멍처럼 작다.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들어갈
수 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결: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매일 좁은문에서 망설이기도 한다.
** 좁은문 앞에서 망설이는 그대여, 좁은문 앞에서 고민하는 그대에게 좁은문의 비밀을 말씀드린다.
- 좁은문의 겉모습은 초라하고 협착하지만 그 길의 마지막은 그렇지 않다. 본문에 보면 “그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말씀한다.
좁은 문은 비록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좁고 볼품 없다. 하지만, 그 길은 영광과 찬란함으로 연결된 길이다.
그 작은 문은 위험하고 불안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
내부는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 좁은 길은 험하고 가시덤불도 있고, 외롭고 고독한 길이지만, 그 끝은 영원한 안식과 축복이다.
그 좁은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체시며, 좁은문을
여는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로를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좁은문으로 들어 가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으로
그 좁고 어두운 인생길을 잘 걸어 가시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온갖 시험과 고난에서도 승리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