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풍랑이 일어나도…” , 마8:23-27,
강인국목사, 2022.9.25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지난 시간까지 보면, 예수님께서는 몰려오는 수 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강 저편으로 가고 계셨다. 예수님은 피곤함으로 인하여 배 위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그때,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강력한 풍랑을 일으키며 파도가 배를 집어 삼킬듯이 달려 들었다.
풍랑은 강력했던 것 같다. 그들은 무서워 떨며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다. 그들은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소리쳤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어부
출신이다. 그들은 웬만한 풍랑에는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되어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물을 알지 못하는 목수 출신의 예수님께 죽게 되었다고 도와 달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면, 바람과 물결이 상당히 강력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풍랑을 잠잠케 해
주셨다.
** 이 짧고 강렬한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교훈해 준다.
** 수고함 후에 시련을 당하는 성도
1) 예수님과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몰려드는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던가? 예수님께서 피곤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땀 흘리며 수고하셨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수고하였고 매우 피곤할 것이다.
아,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잠시 주무시는 그 순간 만이라도 좀 편하고 쉴 수 있도록 해 주실 수
없었을까? 그 수고한 제자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배가 강 저편으로 안전하고 편하게 당도할 수 있도록
순풍을 불어 줄 수 없었을까? 그런데 풍랑이 인다. 그것도
작은 풍랑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 불어왔다.
*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선한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순풍을 불게 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처럼 성도가 예수를 믿고 주님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데 우리 인생에 시련의 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 사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1) 그는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전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2) 그런데, 그는
가는 곳 마다 핍박을 받았고, 가서 목회하는 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고후 11: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시련과 핍박도 넘치도록 받았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그 모든 시련들을 이겨
내었다.
** 그 풍랑이 일때 제자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 제자들이 그렇게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예수님께서 일어 나셔서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그렇게 거칠었던 바람이 산들 산들 잔잔한 봄 바람처럼 변했다.
그렇게 죽일듯이 달려들던 풍랑이 따뜻한 미풍으로 변했다.
그렇게 집어 삼킬듯이 날뛰던 강물이 잔잔한 호수처럼 변했다.
제자들이 그 놀라운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어떤 감동을 느꼈을까?
본문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it was completely calm., there was a great calm.
마태는 그 놀라운 사건을 보면서 그 풍랑이 그냥 잠잠해 졌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감탄하며 표현하여서
자신을 놀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 성도가
열심히 주님을 믿고 섬기는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기도하라는 신호이다.
- 시련은 주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그래서
주님께 더 가까이 가라는 신호이다.
- 시련은 주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여서, 두려움을
이기고 주님께 가까이 가는 시간이다.
- 시련은 주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그래서
믿음을 한뼘 더 성장케 하는 순간이다.
- 시련은 주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그래서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 시련은 주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그래서
살아계신 주님을 더욱 경험하는 기회이다.
** 목사는 여러 사람들을 경험한다.
어려움을 겪을 때 반응하는 사람의 종류를 대체적으로 3가지 분류해 보았다.
1) 어려움에 쉽게 지배 당하는 사람.
너무 쉽게 절망하고, 고통해 한다, 포기한다.
2) 다가온 시련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사람.
3) 주님의 도움으로 시련을 이기고 괴로운 순간을 새로운
도약과 기회로 만든다.
주님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주님의 은총을 경험한 성도는 시련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기대감이 생긴다.
주님께서 이번에 이 일을
통해서 나에게 무슨 은혜를 베푸실 것인가?
렘 33:3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시련 중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그리고… 크고 비밀한 일을… 신비한 일을…
보여 주신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늘의 신비,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신다.
그래서, 어려움 당할 때 마다 기도의 능력이 생기고, 시련 당할 때 마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아픔이 있을 때마다 믿음이 한 뼘씩 더 자라게 되고,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성도는 환경에 지배받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고, 더 놀랍고 축복된 환경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결: 이 내용은 주님은 바람과 풍랑도 다스리시고 자연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때로는 성도에게도 시련의 풍랑이 일어난다. 때로는 신실한 성도에게도
감당키 어려운 절망의 바람이 불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배 속에 같이 계시면, 결코 파선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련의 풍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성도는 삶 속에서 거친
풍랑을 만나더라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아주 잔잔한 평강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인생 삶의 순간 속에
시련의 바람이 불어올 때, 기도하여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시련의 바람을 축복의 바람으로 만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