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행복론 (2), 행복은 마음에서...
모든 사람들은 복을 좋아한다. 한국인은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며, 중국인은 복이라는 글짜를 거꾸로 달아놓고 복의 도래를 기원하며, 미국인은 “God bless America” 를 노래하고 “God bless you” 라며 기원한다.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은 행복에의 추구가 사회적 현상이었다. 로마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를 이룬 시기이다. 철학자 시세로와 같은 지성인은 행복은 자연의 탐구, 지혜의 탐구, 격정으로 부터 자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로마 사람들의 삶 속에 팽배해 있는 일반적인 가치관은 물질적 부유와 쾌락의 추구였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의 공통점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다. 이 땅에서 물질이 풍부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추구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러한 행복관을 보면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여덟가지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여러번 언급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3절), “애통하는 자”(4절), “온유한 자”(5절), “마음이 청결한 자”(8절) 등은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다. 이 말은 곧, 참된 복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고, 감각적인 존재이다. 사람은 보고, 만지고, 듣고서 마음에 어떤 판단을 한다. 사람은 그 판단에 근거하여서 자신의 마음이 괴로움을 느끼거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주위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다가 마음이 우울해지거나 순식간에 불행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마음을 잘 먹어야 한다.
고대의 왕들은 모든 명예와 영광을 다 소유한 자리이다. 당대에 가장 복 받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누구나 한번 쯤은 고대의 왕으로 사는 꿈을 꾼다. 구약 이스라엘에 아합이라는 왕이 있었다. 아합은 어느날 높은 곳에서 자신의 왕궁과 주위를 내려다 보았다. 넉넉한 산과 들판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했다. 그런데, 왕궁 가까운 곳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궁 가까이에 자신과 다른 일반인이 산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 땅이 누구의 소유인지 알아보았더니 나봇의 포도원이었다. 그래서 아합왕은 나봇을 불러서 그 포도원을 자신에게 팔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나봇은 조상이 물려준 땅이기에 팔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아합이 어떻게 했는가? 왕상 21:4절에 보면,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한 나라의 왕이 작은 장난감 때문에 토라진 아이처럼 토라지고 화가 났다. 세상에서 가장 영광된 자리에 있는 왕이, 작은 포도원을 때문에,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나이가 되었다. 그의 손에는 물질과 권세가 넘치는데, 그의 마음은 욕심과 고민으로 가득찼다. 작은 물질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왕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나이로 변했다.
사람의 마음은 제한이 없다. 사람의 마음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람은 자기 마음에 모든 요술을 부릴 수 있다. 사람은 자신에 마음에 궁을 지을 수 있고, 스스로가 왕이 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요술 화폭이다. 사람은 마음에 무엇이든지 그릴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어두운 바다를 그릴 수 있고, 끝없이 높고 찬란한 우주를 그릴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슬픈 자화상을 그릴 수 있고, 기쁨에 찬 자화상을 그릴 수있다. 사람의 마음은 불행을 만들수 있고, 행복도 만들 수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는 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 또한 믿을 것이 못된다. 사람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 질 때에 참된 가치와 행복이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사람이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품을 때에 시대와 물질과 환경과 상관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202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