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할 것인가 격려할 것인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청소년 전도사로 섬길 때였다.
VBS를 끝낸 후 수고하신 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식당에 모였다. 대부분이 20대의 젊은 선생님들이라서 재미있게 떠들며 맛있게 음식들을 먹었다.
그리고 부장선생님의 진행으로 평가회가 시작되었다. 잘 진행된 VBS였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칭찬일색이었다.
그리고 고치고 보완할 점들이 무엇인지를 이제 겨우 22살 정도된 그 부장 선생님이 물었다. 몇 사람이 조심스럽게 아쉬운 점들을 하나 둘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하는 내용이 점차적으로 평가에서 비평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비평의 강도도 점점 심해졌다.
오 잔인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비평이로다. 잘 차려 준 무대 위에서 비평의 칼날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몇몇 선생님들은 비평의 재미에 흠뻑 빠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예리한 비평을 한 선생님들은 그 VBS에 상당히 비협조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 때, 그 말들을 듣고 있던 그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은 구석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36년 전 일인데 그 때 그 여선생님의 눈물이 가끔씩 내 마음에 흐른다.
나는 그 때 겨우 27 세에 불과했지만 몇 가지를 크게 깨달았다.
첫째, 헌신적으로 일하지 않은 사람이 비평은 더 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심리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수고하지 않음을 합리화하고 방어하고 싶어서 한 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점들은 더 잘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비평은 대부분 옳은 말이었다. 그것은 진리이다. 어떤 일에 깊이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조감도적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사건의 문제점들을 더 잘 보게 된다.
셋째, 사람이 비평을 절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비평의 재미에 빠져들면 판단력을 상실하고, 비평을 통해서 자신의 의로움과 훌륭함을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넷째, 비평의 전염성은 바이러스만큼이나 강력하고 맹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이 비평의 운을 떼니까 다른 사람들은 별 생각도 없이 비평의 장단에 춤을 추었고, 그 말 때문에 상처받을 사람이 바로 코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장님이 되는 것을 보았다.
성도는 어떤 사람이 한 일을 지적하고 비평하기 보다는 그 열심과 희생을 격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어떤 일을 멋지게 해 내는 것보다 서로 간의 화목과 평화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강인국목사, 2020.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