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새해는 오는가?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이, 코비드에게 빼앗긴 시간에도 새해는 왔다.
우리의 삶에 년수가 쌓여 갈수록 우리의 생명은 짧아지고 주름은 늘어간다. 그래도 새해가 오면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궤적 속에 둥근 원의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육십이라는 숫자를 한 바뀌 돌면 초, 분 등의 시간의 단위가 생긴다. 달력에는 칠일, 삼십일, 열두달 등을 주기로 새로운 시간이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은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의 부족한 면들을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누가복음에 보면,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지기에게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했다. 그 때 포도원 지기는 "금년에도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눅 13:8,9) 라며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한다.
시간 속에 원의 개념이 있기에 새해에 새 각오로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다시 허락된다. 그리고, 매번 돌아오는 봄 과 겨울이 있기에, 자연만물은 생명의 시작과 소멸을 반복함으로서 세상에 긴장과 환희를 불어 넣어준다.
그런데 또한, 포도원 일군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말한다. 기회가 다시 주어 졌지만 거기에는 끝이 있다. 시간에는 또한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의 개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신의 시간을 시작하지만 죽음으로서 그의 시간은 끝이 난다. 성경은 직선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을 많이 말해준다. 인류의 시간은 창조와 함께 시작하였고(창 1:1), 인류의 역사는 종말과 함께 마지막을 맞이한다(벧전 4:7).
그러면, 창조 이전과 종말 후에는 시간이 없는가? 성경은 창조 이전에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 만이 존재했고(창 1:2), 종말 이후에는 영원한 생명과 심판이 있다고 말한다(히 9:27). 거기에는 윤회같은 원의 개념은 없다. 직선의 개념으로서의 시간은 상당히 무정하고 냉철하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원의 개념으로서의 시간에는 기대가 있다. 새로운 기회가 또 다시 주어진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2021년 이라는 새해는 2020년에 수 많은 사람들이 한번 밟아 보기 원했던 그 시간이다.
특히 작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코비드와 싸우며 가 보기 원했던 그 새해인가? 새해를 맞이한 우리 모두는 진정 행운아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새해를 영원한 가치와 부합하는 의미있는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