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급진적인 예수”, 마태 23:1-10, 강인국목사, 2025.2.2
지난 해에 이어서 마태복음 강해를 다시 시작한다.
떠 오르는 주님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오래 참으시고, 온유하시고, 선하신
예수님이시다.
이사야 53:7 “그는(예수님) 도축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주님께는 조금도 그 성격이 까탈스럽거나 과격한 모습이 없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내용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과격하다. 듣는
사람이 분노할 정도로 급진적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이런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ㄴ
저는 본문을 부분적으로 인용한 적은 있지만 본문으로
설교하지는 못했다. 제 자신이 이 내용을 핸들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태복음을 강해하는데 그냥 건너뛸 수가 없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모든 계획(the whole counsel of God, 행전 21:27)을 꺼리지 않고 다 전하는 것이 설교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은혜로 말씀을 받아 주시길...
-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생활의 본질을 담고 있다. 매우 중요하다.
** 본문 2절,
- 서기관: 이들은
율법을 필사하고 해석하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다.
그들은 유대 사회에 종교적, 법적 문제에 대한 자문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율법사로도 불리웠다.
- 바리새파(다른
사람들과 분리하다): 유대교의 한 분파이다. 그들은 기원전 2세기경에 들어온 헬레니즘 문화를 배척하고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경건주의 운동으로 생겼다. 그들은 약 6천여명의 회원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서기관원들이며 상당히
존경받았다.
. 이 두 그룹을 그냥 하나로 통칭해서 바리새파라고
말하겠다.
** 바리새파의 문제점
1. 2절,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고 말한다.
- 바리새인들은 오경의 계명 613가지와 유대교 전통과 장로들의 유전(미쉬나)들을 해석하고 철저히 지켰다.
- 그들은 구전으로 전해오는 규례들을 정립하였고
세부규례들을 더 만들었다. 유대교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 예를 들면 안식일에 금지한 노동은 39가지인데, 안식일에 지켜야 할 세세한 규례는 훨씬 많다.
. 예)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유학한 친구목사, 토요일에 찾아온 유대교 랍비의 스위치 올려 달라는 요청….
- 그들은 율법의 본질적인 정신보다 율법을 외면적으로
지켰고, 그것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 내었다.
- 그들은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켰기 때문에 내적으로
위선과 악을 저질렀고,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했다.
- 안식일 문제를 보자: 안식일에는 세상적인 일들을 쉬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 그런데,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 그때 바리새파는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고 있었다(눅 6:7). 그리고 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공격했다.
. 안식일의 본 정신,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다. 안식일 규례 자체보다 고통받는 자를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바리새파는 안식일 규례에 매여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둘 다 놓쳤다.
2. 3하,
4절,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한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 ->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함도, 희생, 헌신도 없다.
3. 5절,
“그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다.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 그들은 사람에게 거룩하게 보이고자 겉으로
꾸민다.
4. 6,7절,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
그들은 명예를 좋아하고 어른으로(한국식으로 말한다면..)
불리기 좋아한다.
- 어른들 (선생: 8절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아버지: 9절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지도자: 10절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서 율법을 만들고 잘못 해석했으며,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며, 겉으로 거룩하게 위선적으로 행동, 높은 곳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공경받기 원했다.
* 주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마 12:34)
-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본장에서만 7번,
-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맹인들이여)” 본장에서 5번, (16절, 17절, 19절, 24절, 26절)
* 바리새파라고 다 거짓되고 악한 것이 아니다.
- 니고데모는 바리새파였지만, 그는 주님께 와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겸손히 물었다.
- 아리마대 요셉은 바리새인이지만,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냈다.
- 가말리엘은 바리새인 중에서 어른이었다. 유대인들이 제자들을 죽이려 할 때, 자칫 잘못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라며 유대인들을 만류하였다.
** 무엇이 문제인가?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 거짓되고 외식에 빠진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한다.
현대로 치면 외식되고 거짓된 교회 지도자들을 비판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죄인이든지, 약한자나 고통 당하는 자나 믿음이 작은 자들은 무조건 사랑하고 받아 주신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이 바르게 서야 할 것을 무섭게 책망하신다.
-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판한다. 자신이 의로워서 예수님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 율법의 행위로서 구원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들에게는 예수가 필요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없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가장 율법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율법을 잘 어기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다.
** 사실,
바리새인을 비판하는 예수님의 모습만이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급진적이다.
- 그토록 영광스러운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낮고
비참한 사람으로 오실 수 있는가? 너무 급진적이다.
-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창녀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다. 누가 그럴 수 있을까?
- 예수님께서 인간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보다 더 급진적인 사랑이 있을까?
* 왜 예수님은 그렇게까지 급진적으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는가?
- 이 세상이 급진적으로 악하고 부패 타락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성육신이라는 초이성적 방법, 십자가 죽음이라는 급진적인
방법을 택하셨다.
*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급진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급진적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 주님께서 가장 잔혹하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인간구원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 단지 우리는 단순하고 정직하게 주님을 믿으면
된다. 내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됨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주님을 따르면 된다.
* 하지만,
신앙을 지키기기 위해서 급진적으로 일생을 살다가 간 믿음의 선진들이 있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피 흘리기까지, 생명을
내어놓기까지 기쁨과 자원함으로 주님을 따랐다.
우리가 비록 연약한 죄인이지만,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어떤 급진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담대히 지킬 수 있다. 우리를 지독히 사랑하여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원함과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