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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임 받은 흉악한 강도여..."
본문
마태복음 27:15-26
설교자
강인국목사
분류
날짜
2025-04-06

102 놓임받은 흉악한 강도여…” 마태 27:15-26, 강인국목사, 2025.4.6

 

기독교 초기에 이미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기독교 신앙을 정립하기 위해서 기본 신조를 만든 것이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만들어졌으며 사도적 권위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가 나오는데, 빌라도 입장에서 억울하겠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왜 빌라도가 주님을 못 박은 책임자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악랄한 빌런처럼 사도신경에 기록되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하지만, 주님의 부활 승천 등의 사건들은 자칫 잘못하면 신화나 전설이 되기 싶다. 그래서 유대 총독으로 재임했던 실존 인물인 본디오 빌라도를 언급함으로서 예수님이 역사적 사실임을 말하고자 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틴어, 'sub Pontio Pilato'),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이던 시절에란 의미이다. 한국말 번역상의 오류? 차이이다.

 

* 빌라도: 바로 그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 의해서 유대지역에 총독으로 파송 받았다.

빌라도는 유대교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통치했으며 성전기금을 유용하여 수로를 건설하는 등의 행동으로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하였다.

- 그는 공의대로 재판해야 하는 법 집형관이고, 예수님께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유익을 위해 공의를 외면하고 무죄한 자를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 24, 빌라도가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 성경에는 무죄함의 표시로 사람이 손을 씻는 의식이 몇번 기록되어 있다( 21:6,시편 26:6; 73:13).

. 빌라도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무죄를 선언하고 동시에 모인 군중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다.

. 그가 그 간략한 의식으로 자신의 무죄를 선언한다고 해서 자신의 죄가 없어질까?

-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와 같은 착각을 한다. 어떤 사람은 약간의 선행을 베풀면서 자신의 죄가 탕감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어떤 사람은 약간의 수양을 하고 도를 닦으면서 자신의 죄가 깨끗해지고 구원얻을 수 있다고 심각하게 오해한다.

 

* 심문받는 예수님

- 12-14,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아무 대답도 아니하셨고, 빌라도의 심문에도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놀라워했다.

- 법정에서 심문받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궤변하며 변호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묵하셨다.

- 때로는 침묵이 화려한 변호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침묵의 소리

- 예수님의 침묵의 소리가 들리는가? 예수님께서는 인간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침묵으로 말씀하셨다.  

. 현대는 소리의 홍수 속에 산다. 조용히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을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 빌라도의 아내

-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라며 빌라도에게 조언한다.
- 전승에 의하면 빌라도의 아내의 이름은 ‘프로클라 클라우디아’(Procula Claudia)이다. 그녀는 후에 기독교에 귀의했고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그녀를 성인으로 숭배한다. 그녀는 외경(니고데모서)에 나오고, 각종 문학작품에 등장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본 빌라도의 내면적인 갈등과 그것을 지켜 본 아내의 고민과 심리 변화를 겪으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되는 것을 보여 준다.

- 빌라도가 자신의 아내의 말을 들었으면? 남편들이여 아내의 말을 잘 들으라. 가정평안, 범사 잘

*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 로마는 유대인의 절기에 사형수를 특별사면하여서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유화정책을 폈다.

 

* 강도 바라바: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 유명한 죄수 바라바

- 15: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 바라바는 자신이 저지런 중대한 범죄로 인하여 사형언도를 받았고 사형집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바라바는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로마에게 반란을 계획하고 일으켜서 살인까지 저지런 주동자급의 사람인 것 같다. 그렇다면 바라바는 유대 백성에게는 영웅같은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 17,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충동질). 군중들 바라바를 달라, 예수는 죽이자

. 유대인들은 예수를 대신 죽게하고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요청한다.

.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었다.  

. 바라바는 죽음을 당하기 직전에 예수님 덕분에 살아났다.

 

* 25, 백성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 이 말은 세계 역사에서 반유대인 정서, 유대인 박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 유대인 박해의 역사

- 구약시대: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 신약이후 시대: 유대인 탄압에 불씨를 담긴 것은 십자군 전쟁이었다.

. 당시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 하에 있었는데,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성지 예루살렘 탄환해야 한다고 유럽의 국가들을 설득하여서 전쟁을 하게 된다.

. 십자군 전쟁(1096)을 시작하면서, 십자군들은 성지탈환을 명분으로 이슬람교도를 몰아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도 학살했다.

. 십자군 영화의 한 장면 “You killed our King Jesus” 라며 유대인들을 살육했다.

. 그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도 유대인 박해가 극심했고, 힛틀러의 600만명 학살이 대표적이다.

.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기 때문에 그 벌로 유대인 박해가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 하지만, 그들이 그 피를 우리 자손에게 돌려라란 말은 유대인 박해 구실을 제공한 면은 있다.

 

* 26, (빌라도는) 바라바는 유대인들에게 내어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었다.

-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 유익을 위해서 죄 없는 예수님 대신에 죄인 바라바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 우리도 행여 빌라도처럼 내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보다 죄악을 선택하지 않는지 돌아보자.

 

*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

- 가롯 유다: 마태 27:2 (유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 빌라도의 아내: 마태 27:19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 빌라도: 23:4: 빌라도가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 헤롯왕: 23:15: 헤롯 그가 행한 것은 죽일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느니라"

 

**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달아 죽였다고 했지요? 빌라도? 유대교 지도자들? 유대 군중들?
.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 우리의 흉악한 죄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다.

- 누가 예수님 덕분에 그 참혹한 죽음 직전에서 살아났다고 말씀 드렸는가? 바라바?

. 아니다. 우리/내가, 나의 파렴치한 죄 때문에 끔찍한 죽음을 당해야 했는데, 주님덕분에 살아났다.

. 53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고난절이다.

세상 사람들은 빌라도처럼 자신의 유익과 편안함 때문에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죄악을 선택하지 않고, 고난의 길일찌라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묵묵히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기를 결단하는 고난절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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