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이것 만은 안 된다”, 마태 23: 11-39, 강인국목사, 2025.2.7
종교라고 불리는 어떤 요소들이 있다. 섬기는 신, 창시자, 율법서(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들), 종교적 의식, 내세와 신비, 수도와 고행 등이 있다.
사람들은 종교는 뭔가 까다로운 규례와 의식, 종교적 신비, 수도와 고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해 주실까?
- 지난 주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매우 과격하게 책망하신다.
1* 11너희 중에 큰 자(지도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참된 지도자는 낮은 자리에서
봉사, 헌신, 희생하는 사람이다.
참된 리더쉽은 섬김과 희생에서 나온다. 리더는 봉사와 헌신에 앞장서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2*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거짓 지도자는 더 많은 사람을
실족케 한다.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생활해야한다.
. 거짓된 지도자는 위선과 거짓을
행한다. 권위적으로 행동하여서 자신을 카리스마하고, 신격화한다.
3*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22
. 그들은 성전에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 예물로 맹세한 것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 모든 맹세는 지켜라. 맹세의 궁극적 당사자는 하나님이다. 모든 맹세는 하나님과 한 것이다.
. 세례/결혼/제직/일군서약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한 것이다. 약속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 프라미스 키퍼 1990년에 일어난 남성들을 향한 영적 갱신과 도덕성 회복을 위한 운동..
. 아버지학교 1995년 한국에서 일어난 운동,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믿음의 세대주 회복
4*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향기나는 향신료)와 회향(미나리과 향신료)과 근채(사소한
농작물)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작고 사소한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대단한 것을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 율법의 작은 것을 지키고서
대단한 일을 한 것 처럼 착각하지 마라.
. 무엇보다 율법의 본 정신(정의, 긍휼, 믿음)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 율법의 본 정신을 지켜라.
- 24절,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 그들은 중요한 것은 무시하고, 작은 것들을 매우 중요한 것처럼 꼬투리잡고 문제화 한다.
5*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의식해서
겉으로 깨끗한 척 한다. 그런데 마음은 탐욕과 더러움이 가득하다.
-> 외형적으로 거룩한 척 하는
외식을 버리고, 마음을 청결하고 경건해야 한다.
- 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리새인으로 가는 길이다.
.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려고 노력하는 것은, 조폭 두목이 부하들에게 권위를 보이기 위해서 위엄있게 행동하는 것과
같다. 그래봐야 더 악한 조폭밖에 되지 않는다.
.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깃꾼이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그럴듯하게 자신을 위장하는 것과
같다.
. 내가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거룩하게 보일려고 하는 순간이 거짓으로 입문하는 길이다.
. 성도는 단지 주님의 인격과
마음을 닮기를 노력해야 한다.
6*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선지자들, 세례요한, 예수님, 사도들을 죽였다.
왜? 그들은 선지자들이 회개를
촉구하는 강렬한 설교를 할 때에, 그들은 싫어했고 순교했다.
- 회개를 촉구하는 메세지를 들을
때 겸손하게 회개하라, 설교자를 공격하는 죄를 짓지 말라.
** 사실, 선지자들은 설교는 급진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습과 생활에 있어도 급진적이었다.
- 엘리야: 엘리야 혼자서
아합왕과 이세벨과 군대들, 악한 선지자 850명과 싸워이겼다.
- 이사야: 이스라엘의 죄를 통열하게
꾸짖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경고/회개를 촉구한다. 순교
- 예레미야: 기인의 모습, 항아리를 던져 부수고, 밧줄과 소의 멍에를 목에 걸고, 회개를 촉구했다
- 세례 요한: 기인의 모습, 낙타 털옷, 허리에 가죽띠, 광야에
거주하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 위의 분들이 현대애 우리 곁에서 그렇게 강하게 반복적으로 설교하면 우리도…?
-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 진저” 라는 말을 7번 하신다.
“화 있을 진저”: 극단의 표현이다. 너희는 그렇게 하면 무서운 벌이 임한다고 말씀하신다.
선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 사람들이 너무 악하니까, 평범한
말에는 아무 반응이 없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급진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기인의 모습을 하고 기이한 행위를
한다. 사람들을 주목하게 한다. 충격요법?
. 사람들이 너무 타락하니까, 선지자들은
제발 귀기울여 달라고 신랄하게 신랄하게 회개를 촉구한다.
**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무섭게 책망하시는 이유는 이것 만은 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신다. 요약하면…
- 율법을 왜곡하지 말라. 율법으로 사람을 정죄치 말라.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다.
- 말만 하는 지도자가 되지 말라. 행동하는 지도자,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지도자가 되어라.
- 명예 때문에 지도자가 되지
말라. 참된 지도자는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다.
-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거룩함을
가장하는 외식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 모든 맹세를 지켜라. 맹세의 궁극적 당사자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맹세는 하나님과 한 것이다.
- 작은 율법/일 하나 지키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지 말라. 마음을 다해 율법의 본
정신을 지켜라.
- 회개를 촉구하는 메세지를 들을
때 겸손하게 회개하라. 선지자를 공격하는 죄를 짓지 말라.
-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다. 사람은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완벽히 율법을 지킬 수 없다. 아무리
수 많은 의식을 행하고 고행을 해도 사람은 율법으로 의로울 수 없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율법의 껍데기를
지키면서 자신들을 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지 않는다.
- 주님께서는 그들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바라며 신랄하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리새인이 지운 율법의 짐, 유교적 잔재를 지고 살아간다.
- 그래서 주님께서는 절대로 그들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이렇게 급진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과격하게 유대주의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도 외식적이고 의식적인 유대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주님께서 우리에게 메여있는 그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기 위해서 그토록 과격하게 말씀해 주시고, 급진적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해결해 주셨다.
. 제가 여러분께 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주일이 기다려지고, 주님과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교우님들과 저를 생각하면
보고싶고,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고 싶고,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고, 지도자는 기쁨으로 본을 보이는
신앙생활하기 원한다.
우리는 다시는 무거운 멍에를 매지 말고 감사와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는 신앙인인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