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중에 빛나는 믿음”, 왕상 19:13-18, 강인국목사, 미시아나한인교회
극심한 침체에 빠졌던
엘리야, 40일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람/지진/불을 지나가게 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고, 그 이후에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셨다.
세미한 음성은 기독교의
본질이고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렸다. 세미한 음성은 하나님 그 분 자체에 집중하고,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그래서
각종 절망감에서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13절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어떤 해석: 너 사역지를 떠나서 여기서 뭐하니, 너 책임감없이 사명의 현장을 떠나서 뭐하니, 너 믿음없는 사람처럼
뭐하니, 세상에 종말이 온 것 처럼 뭐하니… 등 질책성의
질문이라고 말한다.
- 나의 견해: 탈진과 절망에 빠져서 패배자의 마음으로 돌아온 엘리야를
따뜻하고 자상하게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맞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이 상상된다.
. 학교에 갔던 딸 아이가, 군대에 갔던 아들이, 회사에 갔던 남편이… 갑자기 집에 돌아오면?
“네가 어찌하여 집에 왔느냐?”라며 놀람과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맞아 들이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너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왜 이렇게 의욕을 잃고 두려워하고
약해졌니?”… 라며 안아 주시고 도닥거려 주신다.
믿으시라, 우리의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어려움에 빠져서 힘들어할
때 “너 왜 그러니~, 왜 그렇게 힘이 축 빠져 있니~, 왜 그렇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니?”라며 우리를 안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
그 때 엘리야는 설움이
북바쳐 오르며 어릿광 부리는 아이처럼 하나님께 투정하고 하소연한다.
첫째 하소연: 14절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엘리야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한다. 모~두 다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나 혼자, 나만 혼자 유별나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죽기까지 생명바쳐 일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타내고 자랑할 수 없다.
그래도 적어도 한가지
정도는, 성도는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클레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
정말 열심히 봉사했습니다.””하나님, 나 이런 것 버렸습니다. 이런것 희생했습니다.”
주님, 주님 때문에 형제, 미운사람, 원수같은
사람 사랑할려고 엄청 노력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형제/웬수를 사랑합니다”
이것을 신앙인의 양심이고
상식이라고 말하고싶다. 주님/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수고한
것이 있을 때 할 말도 있고, 기도가 나오고 하나님께 할말/하소연이
있지 않을까?
두번째 하소연: 14정 중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엘리야는 지금 하나님께 일러 바치는 중이다. 하나님,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미주알 고주알 일러 바친다.
고자질하는 것도 자신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고자질할 수 있다.
성도는 하나님께는 무엇이든지 다 말해도 된다.
- 하나님, 그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반했습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지금 나를 죽이려고 온갖 악행을 저지럽니다. 라며 다 일러 바친다.
- 사람 뒤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하나님께는 고해도 좋다.
-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상식적인 사람, 양심적인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당혹하실 것이다. “야, 네가 더 문제다” 라며
혼내실 것이다.
-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이 처한 사항을 자세히 고할 때, 영혼의
힐링이 일어난다.
그것을 가장 잘 한 사람은? 다윗이다. 이것은 다음에 기도에 관해서 말할 때 자세히 말하겠다.
세번째 하소연: 14절 하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다 죽고
혼자 남았다’… 세 번이나 한탄한다.
열상18:22: 바알의 선지자와 대결시, 19:10: 호렙산 동굴에서 하나님을
만나자 마자,14에서 또 다시.. 지금 열심히 일러주고 있다. 마치 밖에서 큰 아이에게 폭력을 당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일러 주듯이… “그들이
내 생명을 취하려 합니다”
엘리야는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엘리야는 불굴의 정신으로 일하였고 강한 믿음으로 일하였지만, 그
마음 밑바닥에는 두려움을 부여안고 외로움에 신음하는 한 평범하고 연약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준다.
두려움을 어깨에 지고 생사가 오가는 긴장감을 가지고
혼자서 외롭게 일하고 싸우는 그런 모습은 사람을 쉽게 탈진케하고 절망케한다.
사람은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도우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인간 사회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있고, 사람들은
모여서 무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다.
시편 102:6 “나는 광야의 올빼미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고” 한 밤중의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같다. 올빼미:
광야의 새…, -> 외로움, 광야에 홀로
버려진 느낌
엘리야는 철저히 혼자였다. 왕과 왕후, 권력자들과 무장한 군사들, 우상 숭배자들과 백성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엘리야를 대적하였다. 엘리야는 홀로 외롭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기 등등한 그들과 대립하여
싸우다가 결국 탈진하고 말았던 것이다.
* 그렇게 구구절절히 하소연을 늘어놓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15,
16절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이스라엘 가운데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명이
있다”
. 하나님은 절망과 탈진에 빠진 엘리야를 위하여 엘리사를
동역자/후계자를 보내 주셔서 엘리야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믿음의 사람 7,000 명을 남겨 두신 사실을 전해 주시며 엘리야의 외로움을 달래고 치유시켜 주셨다.
* 남은자/Remnant
사상: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배도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남겨 놓으신다. 그들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사 6:13)
“밤나무,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 사람은 시련을 당할 때, 믿음의 절개를 굽히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때 위로를 얻고 담대하게 순교의 피까지도 흘릴 수 있다.
- 할렐루야 교회,
김상복목사 간증: 일제치하, 주일날 학교의 부역 LABOR 동원령, 월요일 기압
성도는 서로를 통해서 용기를 얻고 믿음의 회복을
이루어야 한다.
현대는 너무나 동역자 정신이 약하다. 모두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동역자: 돕고, 협력하고, 내가 보지 못하고 할 수 없음을 같이 있음 자체가 힘이
되는 사람…
적어도 2명
이상 동역자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각 목장별, 각 부서별, 각 분야별:
봉사 시에 옆에 아무도 없으면? 누군가가 보고 있어도 힘이 난다.
바울의 힘의 근원: 하나님, 그리고 그이 동역자들이다 “내가 너희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성도는 세상을 통해서 힘을 얻거나 어떤 좋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성도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려야 한다.
결: 세상
사람들은 힘든 일을 만나면 술마시고, 향락을 탐하고, 욕망해소를
하고, 소유하고 소비하는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푼다.
하지만, 성도는
온갖 시련을 당해도 하나님을 통해서 힘을 얻고, 서로를 통해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힘을 얻어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서 승리하자.
[이 게시물은 웹섬김…님에 의해 2019-03-08 06:10:27 주일예배설교 Sermon Webcast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