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3,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시 23, 강인국목사, 2024.11.21
본문: 목자가 양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꼴이 풍부한 곳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고, 위험한 것으로 부터 보호해 주고, 길을 잃거나 아플 때 찾아오고 치유해서 회복시켜 주신다.
* 오늘은 보호와 회복이 그 주제이다.
- 3절, 소생(restore):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 회복,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다시 살게해 줌을 의미한다.
- 4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짧은 문구는 다윗이 인생 속에 겪었던 하나의 거대한 <고난 종합셋트>를 표현하는 말이다.
** 다윗의 시련 연대기(the chronicle of David’s trials): 다윗이 겪은 시련들
-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들은 어린 다윗을 무시하였고, 어린 다윗은 혼자서 양들을 돌보았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로 이새의 자녀들 중에서 왕을 뽑기 위해서 왔는데, 가족들은 다윗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무시 당하고 살았다.
- 다윗이 청소년이었던 시절에 이스라엘은 블렛셋과 전쟁중이었다. 블렛셋(Philistines)은 현재 이스라엘이 전쟁하고 있는 팔레스타인(Palestine)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악연은 참으로 길고 끈질기다. 블렛셋에는 어릴 때부터 용맹하기로 소문난 당대 최고의 전사인 골리앗이 있었다.
.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누구든지 자신과 한번 싸우자고 도발하고 있었다. 골리앗은 40일간 이스라엘을 도발하였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아무도 나가서 싸울 용기가 없었다.
. 이에 어린 다윗이 전쟁터에 간 형들을 면회하러 갔다가 그 소식을 듣고 골리앗과 1대1 맛짱을 뜬다. 다윗은 극적으로 승리한다. 그 여파로 이스라엘은 블렛셋과의 전쟁에서 대 승리를 얻었다.
. 다윗이 그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자, 온 이스라엘백성들과 여인들은 다윗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칭송하였다. 얼굴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잘 생겼다(삼상 16:12)
- 이에 사울왕은 갑자기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런지 모른다고 생각으로 시기심이 불타 올랐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졌다. 다윗은 피해서 살았다. 두번 하였다(삼상 18:11, 19:11).
. 생사여탈권을 가진 국가 최고 권력자가 걸핏하면 미쳐서 사람을 상대로 창 던지기를 할 때 그것을 당하는 어린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사람은 누군가의 미움을 받아도 괴로운데, 최고 권력자의 미움을 받는 그 절망감은 어땠을까? 결국 다윗은 성의 창문에서 밧줄을 타고 도망한다(삼상 19:12).
- 도망길에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릭의 작은 도움을 받았다. 사울왕이 그 사실을 듣고 모든 제사장과 성전 봉사자 팔십오인과 제사장의 가족들과 젖먹이, 가축까지 살육한다(삼상 22:18).
.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자신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고통당하고 죽임 당하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 괴롭다.
. 한국의 노무현대통령이 퇴임 후에 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했다. 유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는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나로 끝내라'는 항거였다.
- 다윗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그래서 피해 간 곳이?
. 다윗은 급한 마음에 블렛셋의 한 도시 국가인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했다(삼상 21:13)
. 너무 두려워서 도망쳤는데 정신차려 보니 사자의 굴로 뛰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두려움이 극에 달하여서 미친척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머리를 산발, 침을 흘리며, 어기적 거렸다(21:13). 참으로 비참하다. 그에게 전쟁의 영웅의 모습이 어디 있는가? 실제 그는 미쳤을런지 모른다.
- 이제는 정말로 도망갈 곳이 없다. 이제 다윗은 아무도 없는 광야로, 굴로 외롭게 도망다닌다.
.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20이정표: “나는 왜 큰 길을 피해서 눈덮인 바위산로 가는가? 나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겄만 왜 사람들을 피하여 황무지로 떠 도는걸까? 아무도 돌아온적 없는 그 길을 간다.”
. 그것은 다윗의 마음일 것이다. 가슴이 아린다, 가슴이 시린다. 우울증이 있는 분은 듣지 마시라.
- 하루는 다윗이 엔게디 사막에 숨었는데, 사울과 그의 군대가 매우 가까이 왔다. 찰나의 순간에 들켜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다윗이 한 동굴에 숨었는데, 사울왕도 그 동굴에 들어와서 볼일을 본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내가 해할 수 없다” 라며 칼로 사울의 옷자락을 잘랐다.
- 다윗이 홀로 아둘람 동굴에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군대를 조직하였고,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시글락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 하루는 전쟁에 참가하려 갔다 왔더니 아말렉이 와서 자신들의 모든 가족들을 잡아갔다. 이에 다윗은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다(삼상 30:1).
- 그런 와중에 사울왕과 요나단은 블렛셋과의 전쟁에서 죽게 되고, 그리고 다윗이 왕이된다.
-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누린다.
. 한번은 다윗이 군대를 정비하고 싶어서 인구조사를 하였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인구조사는 곧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신의 군대를 더 의지하려는 속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로 7만명의 백성들이 죽었다(삼하 24:15).
.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백성들을 막아서서 하나님께 간구한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 “차라리 나를 죽여 주옵소서” 그의 속 마음은 시꺼멓게 잿덩어리로 변했을 것이다.
- 다윗에게는 8명의 아내, 최소 20명의 아들과 딸이 있었다. 속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
. 자녀들 간의 갈등과 암투가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막장이다. 장자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 이에 다말의 오빠 압살놈이 암논을 죽임, 형제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일어남.
.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은 성을 버리고 도망자가 되기도 했고 그가 진압군에 의해서 죽었다. 다윗왕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울부짖었다." (사무엘하 18:33)
. 다른 아들 아도니야도 왕이 되기 위해 음모를 꾸미다가 솔로몬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 자녀들이 칼을 들고 서로 죽이고 학살하는 참상을 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이 자신의 왕위를 탐내고 칼을 겨누며 죽이려는 모습을 본 다윗의 마음은 어떨까? 얼마나 비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 다윗은 수 많은 시련과 범죄로 인하여 툭하면 눈물을 흘렸다. 아마… 일생 만성 우울증에 걸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툭하면 울었지… 다윗은 자신의 침상이 눈물로 뜬다고 말한다(시편6).
- 다윗은 수 많은 시련을 당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주께서 함께해 주시고 주께서 반드시 보호해 주시고, 주께서 반드시 자신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반전, 가장 극적인 회복, 가장 멋있는 복수는 무엇일까?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을 괴롭게 하던 사람들 앞에서 높게 들림을 받을 때 일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무시하던 형들 앞에서 다윗을 장군으로 높여 주시고 왕으로 높여 주셨다.
.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던 그 사울왕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높여 주셨다.
. 하나님께서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다윗을 회복시켜 주시고 높여 주셨다.
- 다윗이 특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다윗은 누구 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었기 때문이다.
* 다윗의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
- 다윗은 시련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해 주실 것을 굳게 믿었다.
. 다윗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다.
. 다윗은 절망의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회복시켜 주실것을 믿고 감사 드렸다.
** 우리의 삶을 들여야 보면 우리 모두는 <시련 종합 팩케지>를 다 한 아름씩 안고 있다.
결코, 누구의 고난이 크고 누구의 고난이 작은지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이겨내지만, 어떤 사람은 제3자가 보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혼자서 고민하고 절망하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한다.
- 우리가 당하는 시련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 극한의 고난이라도 할찌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진심으로 바라는가? 죽을 것 같은 고난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받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참된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한다.
. 좋은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감사하고, 행여 어려운 일이 당할찌라도 그 때야 말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이다. 그래서 우리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우리를 따르리니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란다.